결국 왔구나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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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 결국 왔구나 / 무레 요코 소설



나이 먹는 것도 뭔가 억울한데 온전한 정신을 잃어가는 노후라니... 이런 주제는 그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만나는거라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 이 젊음이 영원할거라고, 나의 부모님은 항상 건재하실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마냥 철이 없고 순진했었구나 싶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치매'에 대한 생각은 몇달 전 읽게 됐던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쓴 수기를 통해 '나도 이제 부모님의 치매에 대한 준비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짙어졌고 아직은 치매가 올 연세는 아니지만 최근 치매에 걸리게되는 나이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역시 안심할 수 없는 문제란 인식이 강해졌다.

<결국 왔구나>는 치매에 걸린 부모님에 대한 8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평소 '무레 요코'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특유의 유쾌함이 묻어나는 소설을 좋아하는지라 과연 이 작가가 '치매'란 병을 어떻게 소설에 녹아냈을지가 너무 궁금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분배받은 유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 연하의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 엄마가 세월이 흐른 후 치매에 걸려 다시 돌아온 이야기인 '엄마, 돌아왔어?'는 함께 몇 십년을 살았지만 엄마의 적금 통장에 달랑 천엔만 남기고 치매에 걸려 성가시게 되자 본가로 다시 돌려보낸 동거남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사치'에게 격한 공감이 드는 내용이었고 젊은 시절 교사직을 하셨던 시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상황에서 힘겨워하는 '마리'에게 정작 남편은 아버지의 증상보다 밖에 알려지면 곤란하다는 식으로만 일관하고 모든 것을 아내에게 미루는 무책임함에 주부들의 공분을 살만한 '아버님, 뭐 찾으세요?', 집안에서 남편의 내조만 하기를 바라는 시부모님의 바람 뒤로 어느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마도카는 갑작스럽게 엄마가 치매 증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와 함께 살면서 직장도 그만두지 않고 남편과 함께 슬기롭게 엄마의 치매를 돌보는 이야기가 담긴 '엄마, 노래 불러요?'는 '아버님, 뭐 찾으세요?'에 나왔던 무책임한 '마리'의 남편에 대한 분을 '마도카'의 남편이 대신해주는 이야기였다. 이어 막무가내인 큰 형이 모시던 어머님이 정신은 건강하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여 형제들끼리 분란이 야기된 이야기 '형, 뭐가 잘났는데?'와 부유한 집안에서 공주같은 삶을 살았던 엄마만 덩그러니 남은 큰 집에 예고없이 방문했던 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함께 상주해 살고 있는 이야기인 '엄마, 괜찮아요?'에서는 재력은 되지만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 접근하여 이익을 보려는 신종 사기범같은 일들도 엿볼 수 있다. '이모들, 안 싸워요?' 에서는 정작 자신의 엄마는 괜찮지만 홀로 계신 이모들의 치매로 인해 돌봐야하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방금 했던 말들이나 행동 등을 잊고 옛날 기억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치매증상이 환각과 환청을 보이는 치매증상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엄마, 뭐가 보여요?', 건축사무소를 오랫동안 하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사무실에 수시로 출현하며 했던 이야기를 또 하거나 엉뚱한 현장에 나가 있는 모습을 그린 '아버지, 왜 왔다갔다해요?'의 이야기 속에서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 자식간의 여러가지 모습과 상황들을 만날 수 있다.

'치매'란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어야하는 고통을 그린 이야기가 많았기에 치매란 단어를 떠올리면 당장 내 일이 아님에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심적 고통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을 경험하곤하는데 무레 요코의 <결국 왔구나>에서는 그런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부모님의 치매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무겁게만 그려지던 치매를 무레 요코 특유의 담백함이란 그릇 속에 잘 담아낸 것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병원에 입원중인 엄마가 갑자기 치매 보험에 대해 알아보며 나에게 어떤 상품이 좋은지 확인해달라고 한적이 있었는데 엄마의 그 모습을 보며 형제도 없고 친척도 별로 없어 만약 엄마가 치매에 걸린다면 나만 힘들거란 생각에 괜히 심통이 나 있기도했지만 생각해보니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앞날에 혼자 있는 딸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을 내가 너무 몰라줬던 것 같아 미안함이 들어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통해 나 혼자만 짊어진다는 못난 생각에서 가족이기에 함께 헤쳐나가야할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 위안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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