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문예출판사 / 도리스의 빨간 수첩 / 소피아 룬드베리




아흔여섯의 도리스는 혼자 살고 있다. 가족도, 반려 동물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도리스,

방문 요양사가 방문해야 집안일과 끼니를 챙겨먹을 수 있는 도리스는 식탁에 자신의 물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을 하나의 의식처럼 치르고 있다. 그 속에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빨간 수첩.

빨간 수첩안에는 도리스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하지만 그 이름들 위로 그어진 밑줄과 '사망'이란 단어로 마무리 된 수첩은 도리스가 살아가는 현재만큼이나 쓸쓸하게 다가온다.

함께 사는 가족도 없는 아흔여섯의 도리스의 즐거움은 멀리 떨어져 미국에 살고 있는 손녀 '제시'와의 화상통화이다. 화상통화를 통해 제시와 그의 가족들을 보며 다르지 않은 매일 속에서 잠깐이나마 즐거움을 느끼는 도리스, 이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 속에서 도리스는 빨간 수첩 속에 쓰여진 이름들이 자신의 삶에 미쳤던 이야기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오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랑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궁핍해진 생활에서 어머니는 맏이인 도리스를 '도미니크 세라핀'이라는 부유한 여성의 집 하녀로 보내게 된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하녀로 가게 된 상황에서 도리스는 어린 마음에 자신을 하녀로 보낸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미워하게 되고 먹을 것 걱정은 없어졌지만 엄격하리만치 깨끗함을 요구했던 세라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세라핀은 매일마다 파티를 열었고 그 파티에 모이는 수 많은 사람들로 인해 도리스가 상처받는 일들도 있었지만 젊은 화가 '예스타 닐슨'을 만나게 된다. 그 후 세라핀은 도리스만을 데리고 파리로 가게 되고 장을 보고 오던 중 한 중년남자로 인해 도리스는 하녀로서의 삶에서 살아있는 마네킹이라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얼굴이 예뻤던 도리스에게 예쁜 옷과 악세사리를 걸치게해 백화점에 마네킹으로 세워 부유한 사람들에게 옷을 팔았던 장 퐁사르와의 만남은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그 시대 돈을 벌며 나름 성공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런 생활 속에 도리스는 '앨런 스미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몇 달의 사랑 후 한마디 없이 그가 사라지게 되고 이어진 엄마의 부고 소식과 함께 어린 시절 헤어진 동생 '앙네스'를 만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독일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점점 일거리는 줄어들게 되고 갑작스럽게 사라진 앨런이 자신이 있는 미국으로 와달라는 편지를 보내오고 도리스는 동생 앙네스와 함께 짐을 꾸려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앨런을 만나게 된다는 희망과 자신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줬다는 고마움을 느끼며 배에서 만난 일레인에게 영어를 배우며 도착한 미국에서 도리스를 기다린건 앨런이 아니라 앨런이 보낸 심부름꾼이었으니 도리스가 받아본 앨런의 편지는 일년전에 보낸 것으로 도리스가 답장을 보냈을 땐 이미 앨런은 병으로 위중한 어머님을 위해 결혼을 한 상태였다. 이들 자매는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될까...란 궁금증은 계속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 후의 삶 또한 평탄하게 이어진 것은 없어 파란만장한 도리스의 삶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했다.

'내 이야기를 쓰면 소설로 열두권은 나올거야' 요즘 사람들은 이런말을 안하지만 나는 어릴 때 부모님 세대에서 이런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으며 자라왔다. 한국전쟁 세대인 부모님만해도 격변이 심했던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한 세월을 견뎌냈으니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여겨질까 싶었는데 도리스의 삶은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니 도리스의 빨간 수첩을 통해 다가온 소설 한권은 짧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한 권 속에 들어 있는 도리스의 삶은 결코 빈약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슬픈 일들도 많았지만 그런 일들을 회상하는 도리스의 이야기는 그저 담담한 어투로 전해진다.

책을 읽기 전에 꽤 다양한 일들을 마주하게 되겠구나란 생각을 했었는데 읽고 난 후에는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도리스 인생이 꽤 가슴 깊이 다가와서 아마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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