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어린 시절부터 내 방엔 TV가 있었다.
요즘 시절에 생각해도 꽤 이른 잠자리 독립을 했던 내 방엔 자그마한 컬러 TV가 한대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 어린 시절에도 나는 TV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귀기울이며 듣는 라디오를 더 좋아했었다.
내가 라디오를 처음 들었던 계기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농사일 중간 짬이 날 때마다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제5공화국 라디오 드라마나 정오 뉴스 등을 익숙하게 들었던 기억에 경직되고 따분한 정치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들려주며 알맞은 노래 선곡을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가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러다 한참 사춘기 시절엔 초저녁부터 시작되는 철수 아저씨의 팝송 프로와 해철 오라버니의 민감한 사항에 대한 소신 발언을 심장 쫄깃해하며 듣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하곤 했었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 라디오 듣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운전을 할 때만 듣게되는데 오랜만에 들어도 역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들의 편안하고 달달한 목소리는 지치거나 우울하거나 힘들었거나 외롭거나 즐겁거나 슬픈 사람들의 마음을 잘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며 기분을 더 업시켜주는 만능 선물 상자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가 듣던 밤>은 심야 라디오 DJ인 허윤희씨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방송을 하며 방송엔 미처 소개되지 못했던 글이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사연들을 묶은 에세이다. 무엇보다 라디오 DJ와 애청자들이 보낸 수 많은 사연들이 실린 에세이란 점이 어릴 적 라디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가슴 달달하게 다가왔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만 굉장히 불합리한 것 같고 나만 처절하게 외로운 것 같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몇배나 힘든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하는 시기가 있다. 아마 그 어떤 것으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틀을 깨는게 훨씬 더딜테지만 라디오를 듣는 것으로 타인의 삶이 담긴 사연을 통해 나와 다른 환경, 다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또한 내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내가 지금껏 느꼈던 왠지 모를 불안과 불합리들은 그저 불편한 나의 주관적인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것들을 통해 내 안에 틀을 하나씩 깨며 앞으로 전진하게 되는 밑거름과 발판이 되어주었던 것이 나에게는 라디오였다.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내 자신의 틀을 깨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지금보다 한뼘 더 자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사연들 속에서 나는 또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자란 나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애청자들의 사연과 그 사연에 대한 허윤희 DJ이의 생각이 담긴 글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사춘기 감수성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소개된 사연 중 오랜만에 예전 살던 동네 빵집을 찾았던 주인공은 잊지 않고 자신을 기억하는 빵집 주인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한마디와 가는길에 힘들어도 끼니 거르지 말라며 갓 구운 빵을 챙겨주시는 따뜻한 마음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 사연을 읽으면서 그저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묵묵히 있었던 것 뿐인데 들쑥 날쑥한 내 기분에 그 사람을 오해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에 사소한 말다툼 후로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문자를 넣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하지 않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괜한 자존심에 먼저 연락할 수 없었던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주었던 사연,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도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