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황금가지 / 우리가 추락한 이유 / 데니스 루헤인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요일, 레이철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의 소설 첫 문장은 이토록 강렬하게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레이철이 왜 남편을 죽였는가?란 궁금증을 던져주고 1979년 레이철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979년 매사추세츠 서부 파이오니어 밸리에서 태어난 레이철, 대학교 교수인 그녀의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둘이 살아가고 있지만 어릴적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커피향이 나던 아버지의 기억은 항상 어머니와의 마찰로 인해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더없는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던 중 차사고로 어머니를 잃게 되었지만 레이철은 어머니의 죽음이 슬프지 않다. 그 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의 이름 '제임스'를 찾기 위해 흥신소를 찾게 되고 그 곳에서 '브라이언 델라크루아'를 알게 된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레이철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단서가 너무 적으며 아마도 찾기 힘들거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곳에 의뢰해도 자신처럼 제대로 찾아낼 수 없겠지만 자신과 달리 시간을 질질 끌며 어머니가 남겨준 조금의 재산을 다 털어먹고 나서야 미안하다고 이야기할거라는 조언을 남겨주고 결국 레이철은 흥신소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버지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겨우 찾아낸 아버지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이었지만 새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까지 있는 화목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으나 그것보다도 레이철 본인이 자신이 딸이 아니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는다.

모든 잣대에 엄격하고 히스테릭하며 집요했던 어머니, 다정했던 기억 한자락만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의 기억을 평생 끌어안고 살았던 레이철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늘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내면에 사랑과 행복,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는 레이철을 통해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연약한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명성 뒤로 그녀 자신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가슴이 아릿하게 다가온다.

기자로서의 명성을 떨치며 하루하루 승승장구하던 레이철은 매력적인 세바스찬과 결혼하게 되지만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잘 어울리는 한쌍이란 수식어 뒤에 그저 자신의 커리어에 레이철이 흠집을 내지 않고 빛나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아이티 지진 특파원으로 현지에 취재하러갔던 레이철은 자신이 숨겨주었던 소녀를 살려주지 못한 것을 계기로 겨우 잡고 있던 내면의 끈을 놓게 되고 방송 사고를 일으키며 공황장애도 심해지고 세바스찬과도 이혼하게 된다.

공황장애로 집밖엔 나가지 못하는 레이철은 식료품도 배달을 받아 먹는 것을 해결하며 지인을 만나거나 쇼핑을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을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힘든 날 속에 세바스찬과 이혼한 날 바에 들렀던 레이철은 그 곳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달라며 찾아갔던 흥신소 직원 브라이언을 만나게 되고 그 또한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자신의 공황장애를 알고 레이철을 지극정성으로 도와주는 브라이언, 평생 자신이 의지할 수 없었던 반쪽을 찾았다는 행복감에 레이철은 안도를 느끼며 둘은 결혼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나날 속에 레이철의 공황장애도 브라이언의 도움으로 호전이 되었고 이제는 집밖에 나가 쇼핑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도 갈 수 있다. 그렇게 공황장애가 진전이 되었는데 레이철은 출장을 간다고 떠난 브라이언을 집 근처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점점 브라이언을 믿을 수 없게 된 그녀...

도입부분에 강렬한 이야기를 던지고 이어지는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처음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과 인생에 대한 의미없음 등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천사와도 같은 브라이언을 만나 레이철이 진정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아가길 바라는 찰나 이어지는 남편의 이중생활, 그토록 믿었던 브라이언이었고 그녀의 아픈것을 알면서도 결혼하여 보듬어주었기에 레이철보다 내가 더 분노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후에 브라이언의 이중생활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장르로 발전하며 뜨뜻미적지근해서 진도가 안나가던 중반부까지의 지루함과 달리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끝까지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란 생각을 품게 되는 소설 <우리가 추락한 이유>, 처음 접했던 작가였는데 내용이 흡입력 있다기보다는 상황마다 그것을 사실적으로 끌고가는 묘사가 탁월하여 기억에 남는다.

"믿는다면, 진심으로 믿는다면,
그리고 전략이 건실하고, 승리의 그날을 위해 가진 것을 전부 전장에 쏟아붓는다면."
그는 양팔을 넓게 벌렸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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