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너무 아파 손만대도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 찾게 된 병원의 진료실, 책상 하나를 놓고 마주하게 되는 의사의 기본적인 태도 때문에 화가 났던 경험이 나에게는 여러번 있다. 몸은 여기저기 아픈데 딱히 병명도 안나오는 와중에 계속되는 검사에 지쳐 질문에 대꾸할 기운도 없을 때 느껴지는 사무적인 말투에서 환자인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불신이었다. '이렇게 아픈 사람을 두고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진료를 받는다고 이 고생일까?' 아마 환자인 입장이나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을 찾았다 겪게 되는 의사에 대한 불신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내 몸이 아프니 할 수 없이 진료를 받고 있으면서도 딱히 신뢰나 교감을 할 수 없는 사무적이고도 가식적인 말투에 증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일들이 많아졌던 것 같다. 더욱이 병명으로 잡을 수 있는 질병에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마음이 아파 찾게되는 병원에서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질문과 환자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는 의사에게 과연 누가 진료를 받고 싶어할까? <당신의 옳다>의 정혜신 정신과 의사는 의사의 관점이 아닌 환자 그 사람 자체에 중점을 두고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데 그 상처를 치유해보기 위해 프로이트나 융, 아들러 등의 이론에만 충실한 심리서를 끌어안고 힘겨워하지는 않았는가? 유명하지만 읽다보면 도대체가 나와 동떨어져 있는 듯한 그들의 진단에 고개가 주억거려지면서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싸그리 잊혀져버렸던 기억은 없었는가? 사람 관계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나도 프로이트나 융, 아들러와 관련된 심리서가 집에 꽤 있는 편이다. 읽을 땐 당장 구원을 받는듯한 기분이 들기도하지만 그 한편으론 진정한 위로보다는 증상에 대한 그들의 깨알같은 이론에 대한 자화자찬의 느낌이 들어 실망감 또한 느끼곤하였는데 이 책은 전문의의 손에 쓰여진 글인데도 그들이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이론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벅찬 감동을 느꼈는데 그동안 이론에만 충실했던 지침서에 너무나 지쳐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인간의 심리를 충실하게 풀어놓아 적당히 마음이 풀어질 찰나에 등장하는 이론들에 그동안 너무나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들췄던 심리서 때문에 더 혼동스러웠다는 것을....
정혜신 정신과 의사는 대기업과 사회적 재난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수 많은 사람들을 진료하면서 가장 중요한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집밥과도 같은 치유의 지침이 되는 것은 자격증이 아닌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드는 공감과 위로라는 것을, 그것을 정혜신 정신과 의사는 '적정심리학'이란 단어로 표현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의사가 되었다는 자기 자만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써 가장 기본적이고도 본질을 잊지 않는 자세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글자 한글자 진심이 담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엄청나게 힘든 일이 있어 힘들었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무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들었다. 책만 읽었을 뿐인데도 이렇게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결 마음이 가뿐해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