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ㅣ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봄 /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유즈키 아사코
처음 이 소설의 제목을 접했을 때 거절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습성과 함께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는 싫지만 타인에게 미움받기 싫어하는 우유부단함의 성격을 지닌 주인공 캐릭터가 연상되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유독 도시락 정서가 남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직장을 다니면서까지 도시락을 싸야하는 직장인들의 고달픈 삶이 짠하게 다가오면서도 도시락에 깃든 정성과 설레임은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라 풋풋함이 들었다.
도쿄 고지마치 변두리에 위치한 '주식회사 구름과 나무' 출판사에서 파견사원인 미치코, 최근 4년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축 쳐져있던 나날들 중 출판사 영업부에서 유일하게 정사원인 아쓰코가 외근 후 점심도 못먹었다는 이야기 끝에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니지만 입맛이 없어 먹지 않고 놔뒀던 미치코의 도시락을 아쓰코가 먹게 되면서 아쓰코는 미치코에게 일주일동안 자신의 점심과 바꿔서 먹는 것을 제안한다. 아쓰코의 제안에 '노'라고 하지 못한 미치코는 자신의 성격을 나무라지만 어김없이 월요일이 돌아오고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을 아쓰코의 서랍에 넣으면 아쓰코는 그날 미치코가 먹을 점심 식당의 지도와 돈이 든 봉투를 건네준다. 뭔가 미션이 되어버린 듯한 점심 바꿔먹기! 빠듯한 생활에 오랜동안 외식을 하지 못했기에 미치코는 기대반 설레임 반으로 첫 식당을 찾아가는데 생각보다 후미지고 시설도 오래되어 실망스러웠지만 생각보다 맛있는 카레맛에 반하게 된다. 그 후로 이어지는 일주일간 미치코는 아쓰코의 점심 행적을 따라가며 그녀의 단골 가게 사장들과 친해지기도하고 아이디어도 얻으며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해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토록 좋아했던 회사가 도산하게 되고 반년동안 아쓰코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연락두절 상태에서 미치코는 번화가에 위치한 큰 회사에 파견직으로 입사하게 되지만 정사원과 파견직들 간의 미묘한 대립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며 힘겨운 회사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회사가 딱히 싫은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것이 내키지 않는 미치코는 한겨울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다 '도쿄 포토푀'라는 상호가 씌어진 차에서 아쓰코를 만나 그녀의 새로운 사업에 대해 알게 되고 일주일간 회사와 병행하며 새벽에 아쓰코를 따라 포토푀 차를 따라 장사를 돕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치코는 아쓰코의 단골사람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노하우를 얻게 되고 여러 방면으로 자신이 몰랐던 분야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는 한편의 소설이 아닌 세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첫번째 이야기인 앗코짱과 관련된 도시락 이야기와 학창시절 내노라하는 날라리였지만 지금은 애매하게 나이만 찬 파견직인 '노유리'와 학창시절 은사와의 만남, 멍하여 사무실에서 민폐만 끼치다 3개월만에 사표를 낸 레미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쁜 삶 속에서 자신을 즐겁게 해줄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이도저도 아닌채로 전전긍긍하는 캐릭터와 인생은 사실 별거 없는 소소함이라는 깨달음을 전해주는 캐릭터의 만남은 자칫 우울하게 비출 수도 있는 삶을 밝고 드라마틱하게 비춰주고 있어 머리를 싸매고 골머리를 앓던 고민거리가 사실은 정말 별거 아닐수도 있다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첫 번째 도시락 이야기를 보면서 45세 독신이며 유능한데다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앗코짱을 보며 일본배우 '시노하라 료코'가 떠올랐고 맛있게 도시락을 먹는 미치코에서는 '런치의 여왕' 일본드라마에서 맛있는 런치를 먹으며 토끼 이빨을 드러내 환하게 웃던 '다케우치 유코'가 떠올라 의외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