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국화
매리 린 브락트 지음, 이다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문학세계사 / 하얀 국화 / 매리 린 브락트 장편소설



아미는 누군가를 찾고 있기도, 찾고 있지 않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올 어떤 것, 미소든, 손짓이든,
익숙한 어떤 것을 찾으면 좋겠지만 꼭 찾으리라는 믿음은 없다.
집회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한 명씩 군중을 훑어보던 아미는 행복처럼 막연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일본 위안부와 제주 4.3 사건을 불운한 한 자매의 일생을 통해 탄생시킨 소설 <하얀 국화>
관심이 가졌던 주제였기에 너무 만나고 싶었던 책이었다. 더군다나 한국계 미국인 '매리 린 브락트'라는 여성작가가 쓴 책이었기에 더욱 궁금하게 다가와졌는지도 모르겠다. 일본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나서 일본에 강력한 사과 조치를 하기보다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진심어린 그들의 사과'보다 액수가 먼저 우선시 되어져왔고 결국 현재까지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국가의 다각적인 모색이 결여된 채 그저 세월이 묻히기만을 바라는 듯한 태도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꽤나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기에 한국계 미국인 여성작가가 그려낸 한국사에 있어 충격적인 사건을 어떤 시각과 문체로 소설을 탄생시켰을지가 궁금했었다. 쉽지 않은 주제인만큼 이 주제에 다가섰던 이야기들은 많으나 자칫 자신의 편파적인 감정에만 치우쳐 독자로서 읽기가 불편함을 느끼게하는 소설들도 꽤 있었고 수박 겉만 핥다가 끝나던 소설들도 만나보았기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펼쳐들게 되었다.

1943년 여름 제주도, 열여섯인 하나는 엄마와 함께 물질을 했고 바위에는 아홉살 여동생 '아미'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삼촌이 전장에 끌려가 6개월만에 죽었고 인근 마을에서 여자들이 하나 둘 일본군에게 끌려가던 어수선함 속에 하나의 엄마는 하나와 아미를 곁에서 한시도 떨어뜨리지 않았고 언니인 하나에게 아미를 한시도 눈으로 놓치면 안된다고 일러주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물질을 하다 숨을 쉬러 수면위로 올라온 하나는 일본군 한명이 동생이 있는 바위에 다가서는 것을 보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해안가로 헤엄쳐 동생이 있는 것을 숨기는 대신 허무하게 잡혀 만주까지 끌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해안가에서 하나를 발견하여 끌고갔던 모리모토 하사에게 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이야기하던 '겁탈'이 어떤 것인지 겪게 되고 스스로 삶의 끈을 놓고 싶은 생각을 다잡으며 동생과 부모님이 있는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부지한다.

2011년 겨울 제주, 아미는 일흔일곱살의 노파이다. 자식들은 다 서울에서 살고 혼자서 물질을 하며 사연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미, 그런 그녀에게 일년에 단 한번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는 여행이 시작된다. 바로 위안부 수요집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으로 아들과 딸은 그런 엄마의 행동에 대해 궁금증이 들지만 엄마인 '아미'는 속시원한 대답을 자식들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한쪽 다리를 절며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 언니와 제주 4.3 사건으로 아미와 엄마가 보는 앞에서 허망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 뒤로 정신이 반은 나갔던 어머니를 겪으며 목숨을 구하는 대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혼인신고를 해야했던 아미.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역사로 배워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 숨이 막히는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을 분노의 감정으로만 이끄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도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하려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감정에만 치우치다보면 분노의 감정 때문에 그것을 읽는 독자로서 꽤 힘든 경험을 하게 되지만 이 책은 분노의 감정보다는 이 책을 읽고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해야할지 고민하자는 작가의 이성적인 판단이 엿보인다는 느낌이 들어 끝까지 읽는데 비슷한 다른 책보다 덜 힘들었던 것 같다. 

충격적이고 슬프며 분노스러운 조선 여인들에게 자행된 한국사는 수치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만큼 4.3사건이나 민주화 항쟁에서 수 많은 희생자를 냈던 독재자, 권력자들에게도 같은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침 뉴스에서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해야한다며 1인 시위를 하시는 '김복동' 할머니를 보았다. 이미 숨이 붙어있는 한 끔찍한 잔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할머니들의 고통을 돈으로 매수하려는 파렴치함이, 한 민족임에도 그녀들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얄팍한 정치 장사꾼들에게 더 깊은 절망감을 느꼈으리라.

누군가는 이미 지난일에 왜 자꾸 집착하느냐고 한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이며 살만큼 살았으니 괴로운 기억은 내려놓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내려놓으면 정말 맘 속의 응어리들이, 괴로웠던 잔상들이 다 없어질까? 그녀들이 바랬던 것은 그저 진심어린 사과였을 뿐인데 이해는 못할망정 왜 차갑게 대하는 것일까, 그런것들에서 오는 충격도 꽤 심했던 것 같다. 본인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돈으로만 매수하려고 드는 정치 장사꾼들이나 그들이 당했을 고통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몰지각한 발언들 때문에 할머니들은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당하시며 긴 세월을 버티셨지만 이제 남으신 할머니들이 얼마 안계신만큼, 남아서 증언해줄 분들이 없게되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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