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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2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평점 :
해냄 / 해리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작가의 5년만의 신작이라 기대를 모았던 <해리>
<도가니>의 배경이 되었던 안개의 도시 '무진'에서 벌어지는 정치와 종교, 모든 곳에서 살아 꿈틀대는 악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 성추행을 당해 무진으로부터 벗어나 오랫동안 외딴 도시에서 살아왔던 '한이나'가 엄마의 암투병으로 인해 무진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믿고 싶지 않았던 무진의 민낯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불우한 그녀의 가정사 때문에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던 친구 '해리'와 '이나'에게 고통의 기억을 안겨준 '백진우' 신부는 이십년 만에 다시 찾게 된 무진에서 진보와 봉사라는 가면을 쓴 채 거대한 악의 중심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핍박을 주는 인물이 되어 있었고 해리와 백진우 신부에게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의 증언 뒤로 고통을 당했던 자들 또한 떳떳하지 못한 이면의 모습은 <도가니>를 읽었을 때의 강도 높은 충격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장애인 남편을 만났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홀로 어린 딸아이와 시아버지의 장애인 일을 도우며 장애인 센터의 원장이 된 해리는 대외적으로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천사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며 성금을 모으고 그런 해리와 연관되어 보수적인 가톨릭에 대항하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우며 수 많은 신도자들의 사랑을 받는 백진우 신부는 더러운 인간의 욕망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 유일한 구세주처럼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진보적이며 봉사정신이 가득한 모습 이면에는 추악한 욕망으로 얼룩진 그들의 실체가 있었으니, 진보와 민주주의의 아이콘임을 강조하며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던 정치인들이 최근 우리들의 뒷통수를 강타했던 사건들과 함께 어우러져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몰상식적이며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만 집착하는 모습은 그저 허구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해리> 1권을 들췄을 때 공지영 작가는 이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그건 독자의 사정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처음 그 글을 보았을 때 우리나라 유명한 소설작가처럼 대놓고 실명을 거론하지는 못하더라도 굳이 저런 글까지 달아야하는걸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랬던 것이 <해리>를 읽으며 백진우 신부의 추종자들과 해리의 뒷배경으로 군림하는 공직자들의 압력에 공지영 작가 자신의 삶이 또한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게 됐다. 말 한마디로 구설수에 오르고 온갖 오해와 억측을 낳는 공인이란 자리라 단서로 달았던 그 한마디에 미처 알지 못한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청렴하며 공과 사의 구분이 올바라야하는 공직자들과 종교인들의 순수함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인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추악함으로 변한 채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이야기는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그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덮어질 이야기들은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허구가 아니라 더욱 충격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와 희생의 정신으로 주를 섬기는 자들의 파렴치한 추문과 사건에 더욱 경악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걸어가야하는 길이 때묻지 않은, 오직 신만을 섬기며 깨끗한 마음으로 자신을 수양해야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사건들은 <해리>를 통해 그냥 지나치는 우리들의 습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해주는 이야기로 다가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