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보다 먼저 만났던 '무국적자'에서 역동의 근현대사를 살아갔던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생생하고 마음 아프게 그려져 기억에 남았던 구소은 작가.
<검은 모래>는 구소은 작가가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했던 작품으로 '무국적자'에서 신랄한 사회비판을 무덤덤한 문체로 썼던 그녀 특유의 글을 이 소설속에서도 만나게 되리란 기대로 그 어떤 책보다 빨리 만나고 싶었다.
1910년은 대한제국이 경술국치의 치욕을 당하며 일본인들에게 본격적인 수탈을 당했던 해이다. <검은 모래>에 등장하는 구월은 바로 그 해에 태어나게 되고 귤나무에 달린 귤 한개값에도 세금이 매겨지던 제주도의 팍팍한 삶에서의 고통을 피해보고자 일본의 미야케지마로 어린 딸 해금을 데리고 정착하게 되지만 그 곳에서의 삶 또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제시대의 모진 강탈과 조선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웠을 그들의 삶, 구월과 해금의 일본에서의 삶 또한 그녀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벗어나고자 했던 바람을 너무도 쉽게 배반하는 것이었으니 지긋지긋한 가난과 일본에 융화되기 위해 노력하는 해금의 모습과 해금의 아들 건일이 조선인이란 이유로 일본인들에게 당하는 차별과 불합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피부로 느껴지는 역사의 감각에서 무던한 손녀 미유는 우익 집안의 남자와 사귀게 되면서 4대에 걸친 역사의 골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모습을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다.
차라리 구월이 일본땅을 밟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란 생각을 해보다가 제주도에 그대로 남았다고해도 더 나은 삶이 보장되지 않았을거란 뻔한 사실에 묵직한 가슴통증이 느껴졌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괴로워했던 건일처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해 괴로운 이들의 모습은 나중에 나온 '무국적자'에서도 이어지는 내용 같아 역사가 안겨준 고통이 얼마나 인간에게 가혹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