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고 길이 좋아 떠난 에세이는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포구가 좋아 방랑객처럼 떠도는 섬 여행 에세이는 산과 길이 배경으로 쓰여진 에세이보다 더 쓸쓸하게 다가왔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이 섬이었고 육지로 나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했기에 나에게 포구는 어린 마음에도 답답한 섬을 떠나 신기하고 볼 것 많은, 왠지 모를 섬에서의 해방을 기다리는 설렘과 후련함이 깃든 곳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세월이 흘러 육지로 나가야했고 작은 섬에 갇혀 있는 답답한 마음에 홀가분할 것 같던 도시 생활은 친절 속에 감춰진 이기심에 늘 상처를 받아야했으니 그런 외로움과 쓸쓸함을 안고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섬으로 들어갈 때의 포구는 포근함과 따뜻함, 안정감이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 육지로 돌아올 때는 물보라를 일으키는 후미에서 하염없이 섬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포구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반, 그럼에도 궁금함에 펼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던 책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한껏 담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감정을 버리지 못한 탓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인지, 안좋은 기억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지 가늠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책을 펼치기 전부터 많은 감정과 기억을 끄집어낼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책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1부는 '엄마 덕에 늘 사람이었다'로 기벌포, 거금대교, 연홍도, 익금, 격렬비열도, 서귀포 보목포구, 두미도, 비금, 화진포, 칠산바다편으로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경치, 역사 이야기가 있다. 더불어 중간중간 작가가 사랑하는 시가 실려 있어 처음 만나게 되는 많은 시편을 볼 수 있다.
2부는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아도 좋았네'편으로 구강포, 미법도, 묵호, 팽목, 목포, 등명, 삼천포, 넙도, 마두포가 나오는데 조천에서 마두포로 가는 마지막 이야기에 카페와 장필순의 노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사실 제주도 조천을 떠올리면 항일운동과 4.3 운동이 치열했던 곳으로 얼마전에 제주 다크투어에서 짧은 4.3 역사기행을 밟았기에 그런 이야기가 살짝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거운 이야기를 뒤로하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조금은 다행이란 느낌도 들었다.
3부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는 벽련포, 영덕 대게길, 여자만과 장수만, 격포, 바람의 언덕, 장도, 송이도, 욕지도 자부포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년 가을 거제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같은 곳을 아이와 걸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있었으나 역시나 짧게 지나갔던 여정의 얕음 또한 느껴져 같은 곳을 갔고 보았지만 생각이나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작년 김만덕 기념관에 갔을 때 출륙 금지령 때문에 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제주도민의 삶을 보며 그 애잔함이 더 깊게 다가왔었는데 나에게도 섬과 포구는 그런 느낌이 많은 곳이었다. 털어내고 싶어도 털어낼 수 없어 쓰디쓴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곳이랄까...그런 기억이 책을 읽으며 많이 완화됨을 느낀다. 답답함이 사무쳤던 곳이지만 그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고 처음 보는 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정을 느꼈던 작가의 감정이 느껴져 조금은 후련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