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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로스미디어 / 절대정의 / 아키요시 리카코 장편소설
아키요시 리카코라는 작가는 <성모>라는 소설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어두운 이야기에 꽤나 섬뜩한 반전을 선보였던 <성모>라는 작품을 통해 그간 범죄 소설에서 주를 이루었던 남성 작가들과는 다른 섬세함을 엿볼 수 있어 신선함을 느꼈던터라 <절대정의>라는 소설을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의 이야기일지 강한 호기심을 느꼈었다.
<절대정의> 과연 절대정의란 말이 현실에서 가능한, 아니 앞뒤 어패가 맞는 말인걸까? 소설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의구심이 들었었다. 살면서 내가 내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여 제단하고 깊이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쭙잖은 선입견으로 사람을 대했다 큰코를 다쳤었던 적이 몇번이나 있었기에 절대정의라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으로 모든 일을 대하는 노리코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내렸던 잣대가 노리코의 행동보다 더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노리코가 말하던 절대정의의 그것과 무엇이 달랐던건가...란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었다. 절대정의 강박증에 걸린것 같은 노리코의 행동은 소설속에서나 등장하는 유별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들 대부분은 모순적이게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어 작가가 독자에게 섬뜩함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오싹함처럼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카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여전히 친하게 어울리며 지내던 어느 날 혼자 밥을 먹던 전학생 노리코의 모습이 안쓰러워 함께 점심을 먹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함께 어울리는 사이가 된다. 노리코는 엄마가 사고를 당해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으며 공부도 잘하며 예의도 발라 가즈키를 비롯한 친구들 부모님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아이이다. 하지만 그런 노리코는 규율과 교칙에 맞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규율에 맞는 처벌을 받게 해야 정의가 자리를 잡는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규율을 어겨도 융통성 있게 넘어가는 것을 지적하는 노리코의 모습에 처음엔 아이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했다며 노리코의 정직함에 감탄하고는 했지만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점점 노리코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같이 어울렸던 유미코와 리호, 가즈키는 노리코에게 다들 한번씩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노리코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반대로 노리코 때문에 위기에 처했던 상황 또한 있었기에 친하면서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고 원리원칙대로 행하는 노리코의 모습에 조금씩 분노의 싹을 틔우게 된다. 노리코는 사람을 친분으로 대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처벌해야한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을 지켜나갈 뿐이다. 그런 노리코에게 숨막혀 하는 네 친구들... 서로 터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노리코를 제외한 네명의 친구들은 노리코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고 어느 날 그것이 폭발하여 일어나게 된 사건, 그 사건이 있고나서 네 명의 친구들은 노리코에게 초대장을 받고 정신이 나간 상태로 5년만에 모이게 된다.
공사에 치우치지 않고 원리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아 많은 비리가 일어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수 많은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신만의 사익을 추구한 이들 때문에 손해를 보며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노리코의 모습이야말로 꼭 필요한 것이지만 소설 속 노리코의 모습은 융통성이 전혀 없는 로봇같은 인상을 풍긴다. 네 명의 친구들은 노리코가 하는 말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여러가지 일들로 감정이 상하게 되고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는 네 명의 친구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데 그 또한 작가가 섬세하게 담아낸 여성들의 심리를 잘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란 것은 알았지만 원리원칙주의인 노리코의 모습과 적당한 타협, 과연 무엇이 옳은 일일까 고민하게 되는 소설이라 어려운 질문 하나를 넘겨받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