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윤심덕과 김우진에 대해 다룬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일본 유학중에 만나 사랑을 싹틔웠다는 이야기였는데 문제는 김우진이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란데 있었다. 일제시대였고 돈 좀 있다하는 양반들에게 첩 한 둘 거느린 것은 흉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는하지만 당시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었던 김우진과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내로라하는 신여성이었던 윤심덕의 사랑의 도피는 지금의 잣대로서는 그저 그들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딱 그정도의 가십으로 다가와졌던 것 같다. 마지막엔 현해탄을 건너며 동반자살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지어졌지만 시체를 본 사람이 없으며 유럽에서 그 둘을 봤다는 목격담이 이어져 정말 죽은 것이냐는 의혹의 글을 보면서 참...별일이 다 있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가슴 아픈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로 생각하며 지나쳤던 이야기를 한소진 작가의 <사의 찬미>를 통해 대중적 잣대로, 현재의 시각으로 그들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 순양리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윤심덕은 말보다 노래가 빨랐던 아이였다. 그런 윤심덕을 두고 동네 사람들은 기생이 될 팔자라며 수근댔지만 먹고사는게 바빠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만 품었던 아버지는 몸이 부서지게 일을 하며 심덕의 뒷바라지와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준다. 열여덟의 나이 윤심덕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다 몸이 상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하지만 졸업식날 학무국장에게 미움을 사는 바람에 원주로, 원주에서 횡성이란 오지로 발령을 받게되었고 농사일을 하느라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아이들의 집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오랫동안 자신을 바라보며 고생한 부모님에게 이제 막 효도를 하려는 바람이 물거품이 되고 심덕은 총독부가 주최한 관비 유학생 선발 시험에 지원하여 조선 여성 최초로 일등을 하며 도쿄음악대학 성악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안동 김씨의 첩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사람 대접을 못받았던 우진의 아버지 김성규는 전남 장성군수를 거쳐 목포의 무안감리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첩의 자식이었다는 설움을 끊어내 악착같이 돈을 벌어 목포에서는 내로라하는 부자가 되었지만 아들 김우진과는 부정이 두텁지 않다. 김우진을 자신의 사업을 더 키울 재목으로 키우고 싶은 아버지의 욕심과 문학을 하고 싶지만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서 늘 삐그덕대는 부자, 그런 어느 날 우진은 아버지에게 일방적인 혼인식을 통보받고 처음 보는 점효와 혼인을 하게 된다. 사랑없이 했던 결혼 생활이 괴로운 우진과 우진을 홀로 마음에 품은 점효, 우여곡절 끝에 딸을 낳아지만 우진은 아버지와 점효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두 사람은 3.1 운동이 비극적으로 끝난데 대해 고국을 위해 나서야겠다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동우회순회연극단'을 통해 서로 강하게 이끌리게 되고 처음 느껴보는 생경하면서도 가슴 터질 사랑과 유부남이라는 우진의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괴로워하게 된다.
한소진 작가의 <사의 찬미>를 읽으며 그 옛날 윤심덕과 김우진은 이러한 사랑을 했을까?란 궁금증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경제적 조달을 받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우진의 모습이 이상주의자처럼 다가오기도하였지만 본인이 되보지 않고서야 그 마음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서로를 향했으나 허락될 수 없었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과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김우진을 향해 홀로 사랑을 지켜나가던 김우진의 아내 점효의 외사랑이 너무나 가여워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현대의 잣대로 윤심덕과 김우진을 욕하던 때가 마음은 더 편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