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역사를 지나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쳐 파란만장했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문화재와 현재의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오묘한 기풍을 자아내는 서울,
무심코 지나쳤던 서울의 수 많은 길과 건물들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서촌으로의 역사산책을 담은 <서촌을 걷는다>는 경복궁과 통인시장, 청와대,
서촌의 상가들만 보고 방문했었던 나같은 사람에게 '알고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책이다.
<서촌을
걷는다>는 광화문 일대를 다룬 1부와 사직동, 체부동, 통의동 일대를 다룬 2부, 누하동, 통인동 일대를 다룬 3부, 옥인동 일대를 다룬
4부와 효자동, 궁정동, 신교동, 청운동 일대를 다룬 5부로 나뉘어진다.
아이와 함께 경복궁과
청와대, 한글가온길, 통인시장쪽을 둘러보며 역사 체험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길과 건물 속 수 많은
사연에 가슴 벅차오름과 분노, 슬픔과 안타까움 등을 느끼곤 하였었다. 이 책 역시 그런 여러가지 감정을 이야기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었는데 직접
가지 않아도 체험하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광화문하면 경복궁과
서촌, 북촌 등 볼거리가 많지만 커다란 교보문고가 있어 아이와 꼭 들르곤하는 장소인데 교보생명이 커나갈 수 있었던 밑거름에는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가 가지고 있던 성북동 토지가 큰 역할을 하였는데 그 과정이 또 가관이라 이게 무슨 막장인가 싶을 정도인데 얘기로 들어가자면 원래 신용호가
가지고 있던 동작동 3만 6천여 평을 국립묘지 확장 과정에서 정부가 미개발이었던 성북동 330번지 10만 7천여 평을 대준 것으로 애초에
신용호가 가지고 있던 동작동 땅을 사기로 산 것이 문제가 되어 원상회복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에게 들어간 청탁으로 인해
판결이 흐지부지 된 이야기는 지금이나 전이나 뭐하나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하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삼청장의 주인과 또 다른 친일파의 가족들이 얽힌 이야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했던 해방기 이후 정리되지 않았던 친일파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누군가는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정말
해야될 일을 놓치는 것이 아니냐며 현 정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하지만 몇 십년동안이나 정리되지 않았던 역사의 옳고 그름을 지금이라도 정리할
수 있어 후손된 입장에서는 자그마한 안도감이 생긴다.
<서촌을
걷는다>를 읽고 있으면 친일행적을 밟았던 사람들이 서촌에만 몰려 있었던건가? 싶을 정도로 매국노 짓을 서슴치 않았던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시인 노천명과 이상범 화가의 이야기를 통해 신지식인이라 불리웠지만 일본에 굴복했던 그들의 모습에서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몰랐던게 속 편했을 것 같기도한 서촌으로의 여행은 역사의 우역곡절만큼이나 그곳을 거쳐갔던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어 어디로 향하는지 뚜렷히 알 수 없는 분노와 안타까운 마음에 그저 속만 상한다. 다음에 아이와 서촌을 가게 된다면
아주 천천히 걸으며 그들이 살았던 이야기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