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적에도 이사카 고타로의 글을 읽곤했지만 몇년이 지나 문득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마주볼 때마다 '내용이 뭐였더라??' 하게 되곤 했었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작가와 견주어 충격적이어서 잔상이 오래남는 소설이 아니다보니 그런 느낌이 더할듯한데 얼마전에 읽은 <화이트 래빗>을 읽으며 비로소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아마 한참을 내리 읽었던 충격적인 소설 때문에 뭔가 잔잔한 소설을 읽고 싶었던 기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잔혹한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내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던 <화이트 래빗>의 주인공의 모습과 심각한 대치 상황에서도 블랙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주변인들의 상황이 매우 코믹하게 다가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악스>란 소설도 킬러에 대한 이야기라 <화이트 래빗>을 읽었을 때 느꼈던 충족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을 내자면.... <화이트 래빗>은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 되었지만 <악스>는 그렇지 못하다는데서 더 마음에 진하게 남았던 작품이었다.
평범한 문구회사의 영업사원인 미야케, 하지만 그는 미야케라는 이름보다 살인청부를 받는 일명 '풍뎅이'로 불리우며 이중생할을 해나가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고등학생을 둔 풍뎅이는 킬러라는 감춰진 직업과 어울리지 않게 항상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그녀가 하는 말에 과장된 리액션을 취하고 뭔가로 아내의 심기를 건드려 화나게 만들었다면 바로 저자세로 미안하다고하는, 어떻게 보면 부부간의 더 큰 감정싸움으로 번지게하지 않는 현명함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불쌍하게까지 보이는 가장의 모습이 우습기까지하다.
평범한 영업사원이란 타이틀 뒤로 업계에서는 깨끗한 일처리로 유명한 '풍뎅이'는 이제 그만 발을 빼고 싶지만 중개업자인 '의사'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인다. 어쨌거나 발을 빼고 싶지만 당장은 뺄 수 없는 형편인 '풍뎅이'는 '의사'에게서 계속 살인의뢰를 받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그를 헤치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악스>를 읽으며 <화이트 래빗>처럼 유쾌한 결말로 끝나리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풍뎅이'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희생에 마음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밤중에 시끄럽다는 아내의 소리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야식으로 컵라면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였지만, 소설을 읽을 땐 참..안쓰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것조차 '풍뎅이'에겐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