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실레스트 잉 지음, 이미영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나무의철학 /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 실레스트 잉


책의 제목에 걸맞게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의 첫 장면은
셰이커하이츠 시에 사는 리처드슨 씨네가 불길에 휩쌓인채 활활 타오르는데서 시작한다.
리처드슨씨네의 막내딸 이지가 저지른 방화로 추정되는 이야기와 더불어
첫째딸 렉시, 훤칠한 키에 미남인 둘째 트립, 눈에 띄지 않는 무디의
불타고 있는 집을 바라보는 시선과
리처드슨 부인이 자다가 불길을 피해 녹지대에 서서 멍한 표정으로
자기집을 바라보는 시선이 교차한다.
그리고 화제의 원인이 평소 리처드슨가에서 구제불능이라 일컬어지는
이지일거라는 소곤거림을 뒤로 세입자 미아와 딸 펄이 그곳을 떠나는
묘한 장면은 도대체 왜, 누가 이 불을 냈을까? 였다.
자신들이 살던 집이 불타는 장면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과
불안감, 무관심, 분노심등이 묘하게 섞여있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너무 달라 순간 당황스럽게도 비춰진다.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는 집이 불타고 있는, 첫 장부터 강한 도입을 하고는 있지만
그 뒤로 리처드슨가와 리처드슨의 아내 엘리나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예술가 미아와 그녀의 딸 펄에게
임대를 해주면서 셰이커하이츠 시의 독특한 주거양식과
인종차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한껏 지향하는 엘리나가
자신이 태어난 이 곳에서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을 베풀며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야기, 그녀의 네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 이야기가
초반부분 약간의 지루함을 안겨주고 있지만
중반부분이 지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힌 심리묘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며 정을 붙이지 않는다는 규칙을 만들어
펄이 태어나면서부터 마흔여섯 개 도시를 떠돈 모녀,
미아는 예술작품 하나를 하기 위해 수개월을 작품에 쏟아부었는데
작품이 끝나면 그곳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생활처럼 배어있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모녀에게는 정착하는 곳마다 누군가를 사귀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고 또 누군가와 친해졌어도
그곳을 떠남과 동시에 다시는 볼일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그런 삶을 14년동안 이어오던 모녀는 윈슬로가에 있는
엘리나의 임대집으로 오면서 딸 펄에게 이곳에 정착하겠다고 약속한다.

엘리나의 둘째 아들 무디는 윈슬로가에 왔다가
펄과 미아 모녀를 보고 스스럼없는 펄과 친해지게 되고
어느 날 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게 된다.
지금까지와의 삶이 통째로 흔들릴만큼 무디의 집에 들어선
펄은 안락함에 충격을 받게 되고
점점 리처드슨가에서 보내는 시간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딸을 옆에서 바라보는 미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입각한 엘리나는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한달 집세를 안받는 대신
자신의 집청소와 저녁준비를 미아에게 부탁하게 되고
미아는 자신의 딸이 왜 리처드슨가에 매료되었는지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런 과정에서 리처드슨가의 골칫덩어리 막내딸 이지는 
오케스트라 선생님께 대들었다는 이유로
정학을 맞게 되고 바른길의 모범인 엄마와 달리
선생님께 복수하는 방법을 알려준 펄의 엄마 미아에게 반하게 된다.

그렇게 위태위태한 미아 모녀와 리처드슨가 사람들,
위태로움에 불을 지핀 것은 미아와 식당에서 같이 일하던
중국인 여자가 아이를 소방서에 버려두는 일이 생겼고
산모의 상태가 안좋았기에 치료를 받고 다시 아이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아이를 버려둔 소방서가 어디인지 몰라 못찾는 것을 알고 있는 미아와
엘리나의 친구 린다가 십여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아이를 유산하기를 반복한
끝에 입양신청을 하고도 삼년을 기다려 소방서에 버려진 동양 아이의
임시 입양부모가 되어 정식으로 입양신청을 한 일이
아이를 위한 파티에 참석했던 렉시로 인해 미아가 알게 되고
미아는 그것을 중국인 동료에게 이야기하며
작게 타던 불씨가 활활 타오르게 된다.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도 있었던 미아 모녀와 리처드슨가 사람들,
엘리나와 네명의 아이들, 미아와 펄의 이해관계가 섞이며
묘하고도 아슬아슬한 심리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어
중반부가 넘어서면서부터 언제 터질지 모를 이야기에
가슴이 조마조마함을 느끼게 됐다.

엄청난 몰입도를 안겨주지도,
그렇다고 충격에 빠지게 만들만한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인물에 대한 심리상태가 잘 묘사되어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뻔히 보이는데도 나중에는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사실 영미권 작가들의 문체는 상황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세세함에
길어지는 문체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많은데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도 초반부에는 몰입하기 다소 힘들정도로
어수선하게 느껴졌었는데 중반부터는 확실히 읽는 가속도가 붙어
초반과는 달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평생을 두고 엘리나는 그처럼 불같은 열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배웠다.
열정은 통제에서 쉽게 벗어나버렸다.
벽을 타고 올라가 참호를 뛰어넘었다.
불꽃은 벼룩처럼 뛰어올라 빠르게 번져나갔다.
산들바람에도 불씨는 수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었다.
올림픽 성화처럼 그 불꽃을 통제하여 조심스럽게
한 세데애서 다음 세대로 건네주는 편이 나았다.
혹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처럼 신중하게 불꽃을
돌보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빛과 선은 절대 아무것도 불타오르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키시키도록, 조심스럽게 통제되고,
길들여지고, 갇힌 상태에서도 행복하게,
핵심은 큰 불을 피하는 것이라고 엘리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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