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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 이외수의 소생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9년 5월
평점 :
책장을 넘길 때마다 향긋한 내음이 풍겨온다. 코는 이내 곧 향기에 익숙해져 무뎌지지만 책을 덮고 다른 일을 하다 다시 책을 펼칠때마다 향긋한 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향기를 음미해 본다. 좋다.... 일단은 향기만으로도 좋다.
이외수님과 정태련님이 콤비를 이루었던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에서 처음 만났던 향기나는 책이 <하악하악>을 거쳐 <청춘불패>까지 이르렀다. 이외수님의 촌철살인 같은 날카로운 유머가 물씬 풍기는 글과 정태련님의 사실적인 세밀화, 그리고 책의 향기... 그 어우러짐이 멋지다.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글은 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향기는 향기대로 내 마음을 흔든다.
장마가 오려는지 습도는 높아 끈적거리고 햇살은 뜨거워 짜증이 나던 어떤날 이 책을 만났다. 원래부터 이외수님의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좋아했기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빨라졌고 바늘 끝처럼 뾰족하게 곤두서 있던 마음이 점차 누그러지는게 느껴졌다. 몸이 끈적거린다고, 너무 덥다고, 창 밖의 공사장 소음이 너무 시끄럽다고, 연습이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짜증내 봤자 결코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 마음이 뾰족할 땐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내 마음을 다독이게 만든다. 마음이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청춘들에게 고하는 16개의 이야기가 '작가노트'와 함께 번갈아 실려있는데 어느 이야기 하나라도 내게 해당사항이 아닌게 없었다.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용서하지 못하는 그대에게, 열등감에 사로집힌 그대에게.. 나를 콕 찝어 지칭하는 듯하다. 부모를 증오하는 그대에게, 왕따로 고민하는 그대에게, 자살을 꿈꾸는 그대에게.... 콕 찝어 지칭하는 '그대'에 내가 해당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들이 있다. 책장을 덮고나니 좋은 강연을 들은 기분이다. 무언가가 마음에 그득 차 있어 든든해진다.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긴 인생에서 보면 나도 아직은 청춘이라고 굳이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청춘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간에 좌절하고 고민하는 사람, 좁은 소견으로 제 눈 앞만 살피는 사람, 힘든 사랑에 방황하는 사람, 인생에 회의가 드는 사람이라면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내가 마흔, 쉰이 되어도 곁에 두고 때때로 펼쳐 읽어야 겠다. 특히, 세상에 짜증이 날 때는 더욱 더.
숯덩어리가 불덩어리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희망이지만 숯덩어리가 금덩어리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욕망이다. (p.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