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정채봉 지음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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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이었는지 고등학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우연히 보게된 영화가 '오세암'이었다. 시큰둥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영화에 나는 빠져들었고 동글동글 귀여운 길손이가 엄마 부처님의 품안에서 스르르 눈을 감을 땐 펑펑 울고 말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이 있다는걸 알았고 서점에 가서 그자리에서 <오세암>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았던 영화 <오세암>을 통해 나는 정채봉님을 알게 됐다.

 

나에게 <오세암>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음에도 정채봉님의 다른 책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을 통해 오랜만에 정채봉님의 따뜻한 글을 만나게 되어 기쁘기만 하다. 정태봉님의 따님이 쓰신 여는 글은 책을 읽기도 전에 내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하늘로 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그 마음이 내게도 느껴진다.

 

이 책에는 짧은 우화같은 이야기들도 있고 수필같은 글도 실려있다. 어느 것 하나도 그 분의 따뜻함을 품고 있지 않은 글은 없다.

작가 본인이 제일 좋아했다던 11월에 뜻밖의 암진단을 받고 딸과 함께 포장마차 데이트를 하는 '11월에'라는 글은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나도 좋아하는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을 좋아해서 그런지 한문장 한문장이 가슴에 콕콕 와 닿는다. 찬바람이 겨드랑이께를 파고들면 '그래 살아 보자'하고 입술을 베어 물게 하는 달(p.70). 그토록 좋아했던 11월에 슬픈 소식을 듣다니...

 

요즘은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하늘은 왜 좋은 사람들을 이리도 빨리 데려가는걸까... 곁에서 없어지고 난 후에야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컸었던가 실감하는 것처럼 사람을 잃고서야 그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정채봉님의 따뜻한 글을 읽고 있자니 슬며시 하늘이 원망스러워 진다. 이렇게도 따뜻한 분을 왜그리 빨리 데려가셨나요. 포근한 이야기들로 상처받고 얼어버린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게 조금 더 머무르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채봉님이 좋아 했다던 '나'라는 단어. 어쩌면 정말로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이 '나'였는지 모르겠다. '나'를 잃어버리고는 무언가에 쫓기듯 허둥지둥 앞만보고 달려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는 짧은 시간이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행이었던 듯하다. 얼어붙었던 내 마음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신 정채봉님이 한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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