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8일째 매미>라는 제목을 보고 어릴적에 얼핏 들었던 매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랜 시간을 땅 속에서 유충으로 지내다 성충이 된 후 7일을 살다가 죽는다는 매미의 일생. 그 얘기를 듣고는 자기의 짧은 생이 아쉬워 그리도 열심히 울어대나보다 하고 시끄러운 매미 소리를 잠깐이나마 이해했었다. 어디까지가 과학적으로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을 듣고 짐작했었던 매미의 일생이 이 책 속에서 등장한다.

 

7년 동안 땅 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7일간 사는 매미. 동료들은 모두 죽었는데 8일째 되는 날까지 살아 남은 매미가 있다면 그 매미는 무섭고 슬플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 갈 때쯤엔 8일째에도 살아있는 매미를 다르게 받아들인다.

"8일째에도 살아 있는 매미는 다른 매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을 꼭 감아야 할 만큼 가혹한 일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p.327)

 

일본 작가의 책들을 한창 많이 읽었었는데 읽다보니 일본 소설들이 그네들의 음식맛처럼 약간은 밋밋하고 밍숭밍숭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해서 꾸준히 읽게 되는 미스터리류들을 제외하고는 일본 소설을 삼가고 있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가쿠타 미쓰요. 그간의 일본 소설과는 다른 느낌으로 나를 확 끌어당겼다. 이렇게 끈끈하고 감칠맛 나는 소설을 쓰는 일본 작가도 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나는 끈끈한 이야기가 좋은 모양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지만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8일째 매미>도 역시 가쿠타 미쓰요구나 싶게 나를 사로잡았다. 첫장을 넘기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깝다는 마음이 들게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그녀의 책이 내 맘을 끄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안의 그녀>에서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상처받지만 결국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아오이와 사오코가 등장하더니 <8일째 매미>에서는 기와코와 가오루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서 상처를 치유받는다. 나는 가쿠타 미쓰요의 이런 인간에 대한 애정이 참 좋다.

 

기와코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유괴해서 가오루라고 이름짓고 끔찍이 사랑하면서 키운다.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치지만 기와코는 결국 체포되고 가오루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혼란스러워 하게되고 커가면서 자신을 유괴했던 기와코도 부모도 모두 원망한다. 어릴적에 잠시 함께 지냈던 지구사의 권유로 자신의 과거를 마주보는 여행에 오르고 서서히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가오루가 기억해낸 기와코의 모습, 경찰에 잡혀가는 그 마지막 순간에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 아이, 아직, 아침을, 안먹었어요."라는 말만을 크게 외치는 기와코의 모습은 눈물이 왈칵 쏟게 만든다. 잡혀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걱정 보다 아침을 먹지 않은 아이만을 걱정하는 모습은 그 어떤 서술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이 책은 미워해야 할 범죄자인 기와코를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아니, 미워하기는 커녕 안쓰럽고 불쌍해서 부디 잡히질 않길 손모아 기도하게 만든다. 이런 느낌은 인간에 대해 가쿠타 미쓰요가 갖고 있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날 때마다 색다른 뭉클함과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그녀의 책이 또다시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내 마음을 울릴지 얼른 만나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