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벨아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1.모파상
자연주의 소설가 모파상. 플로베르의 제자인 모파상. 단편소설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모파상. 여자에게 주의를 기울인 모파상.
내가 기억하는 모파상은 그 정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째서인지 나는 예전에 모파상을 굉장히 따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첫소설인 '비곗덩어리'가 실린 단편소설을 읽고서 충격을 받았다. 자연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도 느꼈다. 모파상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작가의 목소리로 등장인물이 어쩌느니 저쩌느니하고 판결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할 뿐이다. 주인공이 착하지만 어리석다고 그 성격을 규정한다든가 영리하지만 사악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행동과 모습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모파상의 단편을 읽을 때면,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모두 그들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다. 자고나란 사회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뿐이지, 딱히 선한 자가 따로 있고 악한 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평범하고 편협적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하나쯤은 세상을 규정짓고 판단하며 살아갈 기준점 정도는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에 얽매여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 정말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
2.표지
이번에 민음사판으로 나온 '벨아미'는 사실 표지가 마음에 쏙 든다.
작가의 사진을 표지로 할 때도 있고, 작가가 남긴 그림으로 표지를 할 때도 있지만, 가장 많이 선택되는 것은 작품의 내용과 어울리는 미술작품이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모두가 손잡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의 작품을, '나사의 회전'에서는 지식 여성의 이지적이면서도 어딘가 음울한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이번 '벨아미'에서는 냉철해 보이나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한 남자의 초상이 선택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표지의 남자가 계속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일치하는 이미지다.
제본에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좁고 길다는 것이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모두 같은 방식의 제본을 따랐는데, 읽을 때마다 한 페이지 분량이 적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 '벨아미'도 굉장히 많아 보였는데 한 장에서 양옆,앞뒤를 모두 제하고 나니 금방 금방 페이지가 넘어가게 되었다.
3.조르주 뒤루아. 조르주 뒤루아 드 캉텔. 뒤루아 드 캉텔 남작.
아프리카를 헤매던 하사관에서 아무런 것도 가지지 못하고 돌아와 철도 직원으로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듯이 살아가던 조르주는 그 이름의 변화와 함께 성장을 시작한다. 사실 그의 첫모습은 사랑스러울 정도다. 그는 그다지 야망도 없었으며, 좀더 편하게 살길 바랐던 것이 전부였다. 월급날에 매달려 식사 한 끼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에 힘겨워 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그는 전쟁시 동료였던 포레스티에를 만나고 변해버리게 된다. 누군가는 그의 잠재워졌던 본성이 일깨워진 것 뿐이라 하겠지만, 만약 그가 포레스티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미남이지만, 스스로가 미남인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무기로 휘두르지 않으며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드리아가 지미추의 신발을 신으면서 패션과 아름다움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장면과 비슷하다. 조르주는 포레스티에가 빌려준 돈으로 멋진 야회복을 빌려입고 거울속에 비친 자기 모습에 감격해 마지 않는다. 앤드리아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생각해 되돌아온 것과 달리, 조르주는 자신의 원하는 바가 바로 그곳에 있기에 계속 나아갔다.
그에게 여자는 '신분상승의 수단'만이 아니었다. 포레스티에가 보드렉의 정부인 마들렌을 지참금까지 받아서 데리고 살면서 자신의 신분을 높였던 것처럼, 그도 여자를 통해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의 욕망에도 충실했다. 여자는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말과 시선으로서 상대방을 자극시켜야만 자신에게 넘어오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멋진 얼굴과 몸매는 상대에게 거짓사랑고백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빠지게끔 만들었다. 너무나 쉬웠던 것이다. 아무 것도 어렵지 않았기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는, 비록 거짓이기는 하나 그 순간만큼은 상대를 통해 욕망을 채우고자하는 강렬한 진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도 그런 조르주에게 빠졌던 것인지 모른다.
또, 그는 매일 매일 성실히 출근을 하고 그곳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야만 월급이 나오는 세계만 알고 있었으나 정작 그보다 더 많은 월급을 주는 신문사에 들어가서 계속 게임에 빠져서 정작 일은 대충대충 해버리는 사장과, 회사에서 놀다가 밤에 아내가 불러주는 대사를 옮겨 적어 신문기사로 만드는 친구를 보게 된다. 그들이 소위 말하는 '사교계의 인사'들이란 것이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리고 정작 중요한 '일'은 저녁식사와 무도회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비방하거나 아첨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는 그러한 생리에 잘 맞는 인간이었다.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않고 그대로 흡수하고 배워나갔으며, 잘 써먹었다. 아름다운 남자 조르주는 멋진 얼굴과 몸매를 강력한 무기로 휘두르며 다른 이보다도 더 빠르게 그 세계에서 성장하였고, 매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더 나아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혼, 정부, 재혼, 친구의 죽음, 유산분배, 법...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매번 가장 탁월한 선택을 통해 탁월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가 마음의 거리낌으로 머뭇거렸다면 3년의 시간안에 철도 직원에서 남작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면, 누군들 그 삶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나 성공을 바란다. 그러나 성공에 이르는 몇가지 요소를 갖추지 못했을 뿐이다. 기회, 운, 비정한 마음, 순간적인 결단... 그가 분명 비도덕적이긴 하지만, 사실 누구나 비도덕적인 부분이 있다. 우리 사회의 인사들 중에서 한없이 도덕적이기만 한 성공자가 과연 있을까? 난 그래서 조르주가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신문기자로서 활동하면서 사교계 인사들을 꿰뚫고, 상대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으며, 권력의 시종노릇도 비굴하지않게 해냈으나 자신이 치고 올라갈 수 있을 때는 가차없이 상대를 눌렀다. 왈테르의 말대로, 그는 어떻게든 성공할 인재였던 것이다.
4.라셸, 마렐 부인, 포레스티에 부인, 왈테르 부인, 쉬잔
조르주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에두아르 마네가 그렸던 지쳐보이는 그 점원이 있는 술집이다. 신사에게는 하룻밤 유희가 되고 창녀에게는 돈벌이가 되고 점잖은 숙녀들이 상스럽다며 고개를 찌푸리지만 한번쯤은 호기심이 솟는 곳이다. 조르주는 그곳에서 창녀 라셸을 만난다. 하룻밤 상대로 족하다. 돈까지 깎아가며 라셸을 안은 그는 그 다음으로 마렐 부인을 노린다.
남편은 6주에 한번밖에 돌아오지 않고, 자신의 아내가 설마 정숙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는 그런 것들을 생각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마렐 부인은 남편이 집에 있을 동안만 잠시 고행을 한다고 생각하며 자유분방하게 사는 여자다. 그러나 실은 남자에 대한 욕망이 강하고,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순간순간의 유희에 몸을 맡긴다. 겉으로는 마렐 부인 또한 얌전한 사교계의 숙녀일 뿐이다. 마렐 부인은 조르주에게서 '정부로서 참 좋은 여자'로 평가받으며, 읽는 독자에게도 그렇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여자다. 라셸을 통해 조르주의 성격을 알고, 결혼을 통해 한 번 버림받았으며, 왈테르 부인에 의해 바람둥이임을 알게 되고, 쉬잔에 의해 또다시 내쳐졌으면서도 다시 한 번 결혼식장에서 은밀히 손을 잡는 그녀. 과연 조르주가 마렐 부인을 이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은 마렐 부인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조르주를 이용했던 면이 더 크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가 하면 포레스티에 부인 마들렌은 가엾기까지 하다. 아름답고 명철하기까지 했으며, 성공을 위해서 유명 인사들의 정부가 되기도 서슴치 않았다. 마들렌은 조르주에게 그 사실을 은연중에 알리고 결혼이란 공동생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남자의 이름에 숨어서 신문기사를 작성하고, 자신의 가정으로 사교계 인사들을 초대하는 것뿐이다. 내조라는 말밖에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남편을 잃고 조르주를 선택할 때, 그녀는 분명 포레스티에와 조르주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높이 끌어올려줄 수 있는 남자. 그러나 조르주는 포레스티에 보다 야망이 컸고 언제든 마들렌을 내칠 수 있었다. 조르주는 자신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다른 여자를 노린다.
라셸, 마렐 부인, 포레스티에 부인이 점잖기는커녕 그러한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왈테르 부인과 쉬잔은 정반대이다. 왈테르 부인은 남편에게서 사랑을 느껴본 적은 없으나 여자로서의 삶에 순응하고 숙녀로서 자라난 부인이다. 자신의 유대인 남편을 잘 내조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끈 현명한 여인상이었으나 그녀 또한 조르주의 장난으로 타락에 빠져든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을만큼, 그를 위해서 이용당한다 해도 무엇 하나라도 해주는 일이 기쁨이 되어버린 왈테르 부인은 자신의 딸이 조르주와 결혼하게 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러나 그 절망은 어디까지나 어머니로서의 슬픔이 아닌 연적으로서의 질투다. 종교에서 구원을 찾았으나, 그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자신의 욕망을 인식한 왈테르 부인. 그녀가 조르주를 몰랐다면 현숙한 여성으로서 삶을 마칠 수도 있었을 텐데.
왈테르 부인의 딸 쉬잔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다. 그녀는 조르주의 발판이 되어줄 계단에 불과하다. 단지 자신의 아버지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권력이 될만큼 거대한 부를 지녔기 때문에 쉬잔은 조르주에게 선택된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열정을 꾸며낸 말 한마디에 조르주와 도망칠 정도로, 쉬잔은 어리고 어리석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쉬잔을 선택한 조르주의 행동만큼은, 뭐라 변명해줄 수가 없다.
5.노르베르 드 바렌
이 노시인은 자신 앞에 놓인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유일한 인물이다. 바렌은 조르주가 사교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그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추구하든 허무하다고 말한다. 모파상은 이 소설에서 배경 중간중간에 그러한 '허무'를 내비쳤다. 특히 마들렌과 마차를 타고 자신의 고향으로 가면서 즐기는 모습에서, 마치 그들을 금방이라도 사라질듯한 투명한 유령과 같이 묘사한 부분이 가장 강렬하다. 비록 그들은 지금은 서로를 애타게 찾고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용할 뿐이며 다시 헤어질 것이다. 또 조르주가 그 어떤 성공을 이룬다해도, 결국 바렌의 말처럼 죽을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죽음이다.
바렌은 그처럼 모든 것이 허무하고 의미가 없기에 결국 '시'만이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그리 고결한 영혼을 지닌 것은 아니다. 모파상의 전소설에서 보여줬듯이, 그또한 그저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 구원받을 한 가지가 남아 있었던 것 뿐이다. 그는 시를 통해서 스스로를 구하려고 하였고, 또 시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조르주는 바렌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알았고, 포레스티에를 통해서 경험했으면서도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렌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허무'를 해석한 것이다.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면 대체 감내하고 인내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조르주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가졌어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듯, 지켜야 할 것이 없는 듯 행동했던 것이다.
7.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대성당에서 쉬잔과 결혼식을 올리며, 조르주가 떠올리는 것은 마렐 부인이다. 이불속에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귀여운 얼굴로 있는 마렐 부인. 그것이 조르주의 본질 정도이다. 나는 조르주를 욕할 수 없다. 기회를 잡지 못했고, 그가 가진 능력이 없을 뿐. 나는 요즘들어 더더욱 그것을 부러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욕할 수는 없다. 그저 질투를 느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글을 쓰는 모파상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