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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 떨림, 그 두 번째 이야기
김훈.양귀자.박범신.이순원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이명랑 - 사랑을 생각하지 않고 결혼했다. 결혼하고 보니 사랑이더라.
우리 부모님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부부다. 어머니는 기가 세셔서 아버지에게 면박을 줄 때도 많지만 옷이며 음식이며 자식보다 남편을 먼저 챙긴다. 아버지는 잔소리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싶고 다툴 때도 많지만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신다. 그런데 TV에서 외국 배우들이 키스하는 장면이 나올 때 마다, 어머니는 더러워서 보기 싫다며 채널을 돌리신다. 그럼 대체 부모님은 어떻게 연애를 한걸까? 맞선을 봤다고는 하지만 1년 후에 결혼을 하셨다고 하던데.
사랑이 만화처럼, 운명처럼 다가올 것이라 아내는 기대하지만... 말없이 같이 있고 싶어하는 남편의 마음이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김나정 - 가장 미운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였어.
사사건건 눈에 꼭꼭 밟히고 꼬집어주고 싶을만큼 미운 짓만 골라하는 사람. 별건 아니다 싶어도 어느새 돌이켜보니 내게 가장 큰 사람.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이 나왔다. 타락하지 않은 삶은 사랑을 선택하는 삶인가.
고은주 - 가족이란건.
피로 이어져야만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차라리 입양이 낫다면서 전처의 아이들을 키우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들.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전처의 자식을 "참아내어" 키운다고 보는 시각들. 그렇지만 남자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남자를 닮은 그 자식들이 날로 더 사랑스러워지는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다.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닮은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게 우리 삶의 가장 위대하면서도 소소한 진리다.
김규나 -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그저 감사할 수는 없다.
여자는 누구나 자기 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니, 남자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사랑을 베풀기에 나로 하여금 헐떡이게끔 하는 사랑 또한 무작정 행복하지만은 않겠구나 싶다. 그래도, 그래도 이런 사랑을 한 번쯤은 받아보고 싶다. 너무 사랑해서 티낼 수 없는 그런 사랑을.
김훈 - 사람의 몸은 서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닿을 수는 없는 법.
겨드랑이 밑으로 사라지는 정맥. 그 끝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고. 그저 여자의 몸 속으로 사라진다. 그처럼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다름을 시인하면서도 그게 너무 아픈 거다. 오히려, 그로 인한 결핍이 정말 사랑이다. 그런 닿을 수 없는 모든 것, 만질 수 없는 모든 것, 그 때문에 아픈 것. 그게 모두 사랑이다...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시적인 표현이다.
양귀자 -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내겐 이러한 사람이 없다. 누군가가 날 이토록 사랑할 거라고. 내가 누구와 함께 있든, 누구와 함께 살든, 개의치 않고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랑의 크기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현실에 착 달라붙어 있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그처럼 함께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때문에 오만해져 오히려 행복을 놓치는 것은 슬프겠지만, 그래도 바란다.
한차현 - 육체와 정신의 사랑.
관계를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 "날 사랑해서 하는 거야, 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거야?"라고 여자들은 많이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남자들은 정말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솔직해서 더 이해가 간다. 몸속에서 사랑이 끓어 넘쳐서 가지고 싶었던 여자,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랑이 끝나버렸고 여자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끝내면서 남자에게 자신을 준다. 끝남의 의미. 남자는 여자의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랑과 섹스, 그건 하나일까?
신이현 - 어차피 끝날 것을.
파리에서 만난 브라질의 남자. 서로 가난하기에 서로 끝밖에 보이지 않고, 그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저 같이 객기를 부릴 뿐인, 그런 사이임에도... 무언가를 준다고 더 가졌다고 더 사랑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어서 내던져주는 사랑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떠밀고 돌아선다. 어차피 마지막은 추억일 테고. 후회할 거라 알고 있었는데.
후회와 추억이 나을까, 후회와 안락함이 나을까.
서하진 - 내게도 로망이 있어.
로망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군가가 날 간절히 사랑해서 추운 겨울에 3시간 동안 창밖에 기다리고 서 있다가 노래를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같이 바다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보다가 그대로 죽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날 잊지 못해 결혼하고 나서도 날 찾아서 전화를 걸어 준다면... 그런다면...
우리는 하늘을 날지도, 마법을 쓰지도, 사자를 타고 달릴 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로망일 것이다.
누군가가 날 너무나 사랑하는, 그런 상상.
읽고 좋았던 글 몇 개만 추슬러서 한 마디씩 적으려 했더니, 한 마디는 몇 마디가 되었고, 몇 개는 거의 전체가 되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떨리고 설렌다.
바싹 비틀어져서 벌써 그런 것이 무엇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언제 설레였더라?
혼자인 지금,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준다면! (설레도록!)
그랬으면 싶다는 생각이 치솟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