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




처음엔 코딱지만한 떡잎 한 장 내밀더니
꽃 한 송이 올려 놓는 데 육 년 걸렸습니다
꿀벌이 잉잉 다가오자 두근두근 가슴 졸입니다
과연 저 꿀벌은 얼레지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요?

얼레지는 왜 꽃잎을 뒤로 말리며 꽃을 피울까요
꿀벌과 얼레지의 만남을 엿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얼레지는 꿀 단지를 몸 깊이 숨겨 두고
매혹적인 꽃술, 야릇한 향내, 분홍빛 실루엣의 신방을 꾸밉니다
그러나 꿀을 도둑 맞는 걱정이 앞섰을까요
꽃잎을 맞닿도록 당겨서 허술한 꿀샘 뒷문을 가려 놓았는걸요

그러나 얼레지의 몸을 기웃거리던 저 꿀벌,
살그머니 꽃잎 빗장을 제치고 꿀을 따먹습니다
얼래? 얼레지 품에 안긴 것은 허공 한줌이었습니다





<靑林 한현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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