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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문장
김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의 그림형제의 동화는 환상의 세계를 많이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환상적인 세상의 동화 세계를 속 깊이 들여다보면 잔혹한 내용이 함께 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원래의 이야기에 담긴 잔혹한 장면을 그린 의미는 무엇일까?
동화의 세계에 나타난 괴기함을 눈 여겨 보게 된다.
최근 새로 나온 소설로 신예작가 김유진의 첫 창작집에도, 음습한 분위기의 장면이 상상되는 그림과 이미지의 형상이 표현되는 특징이 있다. 야생동물인 늑대나 개떼, 거대한 코끼리, 등의 동물을 소재로 가공할 만한 놀라운 장면이 그려진다.
고대 사회나 신화의 세계를 상상해야 하는 낯 설은 장면 들이다.
< 늑대의 문장 ,김 유진, 문학 동네, 2009 >는 시대구분이 모호한 작품이면서 소재도 특이하게 지진 같은 재앙이나, 고대적 존재의 등장으로 기형화 되어 선택 된다. 신과 영웅의 비참함을 그린 것이기도 하는데, <마녀 >에서는 곱슬머리만 길게 자라는 반신불수가 나오고, <목소리> 에서는 <마녀>같은 백발을 한 나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기괴하게 나온다.
근대의 비극을 주제로 내세운 이 책은, 원인 모를 폭사로 전염병처럼 번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모습을 그린 표제작 늑대의 문장을 비롯하여, 9개의 단편 작품을 모은 첫 창작집이다. 구체성을 제외시킨 초 현실 시공간이 펼쳐진다. 환상의 세계이면서 현재의 세계이기도 하다.
초현실성 시공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내용의 이야기들이 엮어진 이 작품집에는, 작가의 의도가 깊이 내재되어 있다. 희생양에 대한 제의의 절차를 아주 정밀하게 보여 주고 있다. 만연된 재앙을 바닥에 깔고 기괴한 이야기가 전개 되는 공통점도 눈에 띈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며 파편화 되어 가는 이야기의 묶음이다.
테러를 대비한 전시 훈련이 일어나는 < 빛의 이주민 >이 있고, <목소리 >라는 작품에서는 저수지가 범람하여 실족사한 아이가 나온다. 바람이 세상을 삼키는 재앙이 계속 연속되는 <마녀> 같은 작품이 있고, 수 백 명의 재산과 모숨을 앗아가는 지진이 일어난 참혹한 세상이 작품 <움 >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큰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천둥소리가 지반을 울렸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땅이 갈라졌다. 그는 갈라진 틈에 손을 끼우고 가자미처럼 엎드렸다. 지진은 그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매달렷다. 그의 옆으로 간판들이 우수수 넘어졌다.
- p137, 움 -
저자는 <움>에 그려진 기형적인 주인공을 표현하는 홍반이 퍼진 거대한 오른팔을 가진 기형적 몸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황금비율의 전형적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기형적인 아름다움도 있다고 한다. 수긍하기 좀체 어렵지만 미와 추의 개념에 반대 할 수도 없다.
다만, 고대 전설과의 끈을 유지하는 야성적인 이유만 존재한다.
저자가 늑대의 형형한 눈빛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기획 했다거나, <빛의 이주민 >에 나타나는 고통스런 출산을 하는 산모는 거대한 해파리, 삼엽충, 거대한 문어의 환영을 보는 것처럼, 출발점으로 거슬러가는 시원이나 원류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깊은 내면 속의 자연스런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때로는 믿을 수 없는 현실 밖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희생의 위기는 항상 원인 모를 재앙의 형태로 나타난다. <늑대의 문장 > 시작은 세 여자 아이의 폭사 장면에서 비롯된다. 참혹한 현상을 그리는 모습이 담담함을 넘쳐 서정적인 풍경을 묘사하듯 감흥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작 중 이모를 통해 이끌어지는 이야기에는 소름이 끼치는 희생양이 되는 장면이 연속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안한 형상의 배치가 어떻게 보면 불안하고 위기에 처한 현대 사회를 극명하게 나타내기도 한다. 이 낯설고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 현대가 앓고 있는 아픔의 현실을 비꼬아서 기록해 내는 심중 깊은 작가의 작품이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오늘의 현실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극을 그려내고, 그것을 견뎌내는 아픔이 배어 나오는 느낌을 옮겨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