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 이문재 산문집, 개정판
이문재 지음 / 호미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사회의 특징은 무언가 쫓기듯 바쁜 삶과 일에 몰두 하게 되는 일 중독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인간적인 삶을 그리는 시인의 눈에는, 자연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고여 있다. 자연 속 숲에서의 느림을 실천하는 자연 친화 적인 삶을 바라는 소박한 의식의 출발이 담긴 글을 예쁘게 모았다.

 

중앙 일간지에서 아침의 시를 소개하는 코너를 맡아 진행하기도 하였던 저자가, 각 매체에 기고하였던 글을 한자리에 모은 일상의 생각이 녹아 있다. 선각자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본 이야기와,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자연 사랑의 ‘산책자 ’같은 마음으로, 편안한 눈 맞춤을 원하는 글이 엮어져 있다.

 

<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이문재, 호미, 2009. >에는 시작 노트 같고 시 해설 같기도 하다는 글로  저자의 메시지가 여러 곳에 비치고 있다. 생각의 밭에 시어를 뿌리는 저자가, 길에서, 또는 골목에서 성찰한 메시지 속에는, 문명의 급소를 발견해 내는 날카로움이 서 있고, 성찰이 여기저기 길목에서 빛나는 시인의 산문집이다.

 

디지털 시대의 달콤하면서 씁쓰름한 맛을 풍기는 도시의 삶에서 느끼는 비애를 맞으면서, 도심 한가운데 백화점이나 아파트, 자동차에서 찾아내려는 친 환경의 생태학적 삶을 그리워 하며 애쓰는 모습의 풍경이 펼쳐진다. 녹색 환경을 실천 하려는, 일상의 생태적 ‘산책자’의 다짐을 끈질기게 펼쳐 낸다.

 

나의 시간과 공간에 무시로 개입하는 휴대 전화를 이겨 내는 방법은 전원을 '오프'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전원을 끄는 순간, 세상과 단절된다. 서울 한복판이 망명지로 변한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자발적 망명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찬찬히 안팎을 둘러본다. 점심시간이나 출퇴근길, 다 합해야 한 시간이 넘지 않지만, 나는 휴대 전화를 '무시'하며, 지금, 여기가 커지고 길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 p22 -


 

부채나 에어컨, 휴대전화, 카메라 등 주변에서 마주 치는 소재를 비롯하여, 저자의 일상적인 가족 여행의 추억이 그려진 이야기에서 느끼는 흥미꺼리도 널려 있다. 글을 통하여 독자의 공감을 얻어 내고 싶은 바람이 다분히 담긴 저자의 순수함도 엿 보인다.

 

딸과 함께 다녀온 달리기 대회와 지리산 도보 순례나 텃밭을 가꾸는 아름다운 마음이 절제된 문체로 아날로그적 삶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유명 작가와의 인연이 소개되기도 하고, 선후배에 대한  느낌 등, 저자의 단순한 삶과 깊은 성찰이 녹아 있는 일상의 삶이 어렴풋이 보인다.

 

자연의 맑은 샘물에서 길어 올린 순박하고 깨끗한 맛이 나는 글이다. 자연의 맛이 물씬 나는 음식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생각을 길어 올린다. 보리밥, 매생이국, 두릅나물 가을철 송이와 전어 등 입에 저절로 침이 도는 그리운 맛이나, 메밀의 콧등치기를 해 보고 싶게 하는 향토색이 독특하다.

 

느림의 삶을 중요시 삼는 저자의 성찰어린 시각은, 세상과 사물에 대한 생태적 시각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산업 사회가 되면서 변질된 여행의 전락된 모습에 일침을 가하는 글이나, 산업 문명의 과잉과 결핍을 정확하게 읽어내려는 독특함이, 함께 빛을 내는 강 운구 작가의 다큐멘터리 흑백 사진과 너무 잘 어울린다.

 

개정판으로 펴낸 이번  산문집은,만해의 시에서 따온 제목의 아름다움과, 생태주의 작가의 본연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새 정부에서 펼치는 대운하에 대한 반대 의사가 표현 되고, 차라리 도시 길 위에 생태적인 밭을 일궈내 보자며, 느리게 더불어 사는 진솔함을 나누고 싶어 한다.

 

솔직 담백함이 매력적인 글과 흑백 사진에서 풍기는 생명 존재의 차분한 메시지가 ,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게 하는 디지털 시대의 횡포를 날카롭게 비판 하고 있다. 작가 생활 25년을 돌아보며 써낸 글로,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녹차 한 잔의 부드러움처럼 슬그머니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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