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된 여인 [2009.01.02 제742호]

 
[안대회의 조선의 비주류 인생]

조선 시대 한양에 퍼진 허무맹랑한 사연,

동서고금 신화에 등장하는 ‘변신 판타지’


이번에는 좀 허황한 사연을 이야기해야 할 처지다. 조선 후기에는 사람이 물고기로 변한 허무맹랑한 사연이 한양에 떠돌았는데 사람들은 마치 실제로 있었던 희한한 일인 듯 이야기를 전파했다. <추재기이> 끝부분에 실려 있는 ‘물고기로 변한 노파’(化魚婆)가 그 허황한 이야기다.


목욕을 하다 나오지 않아 보니…


한양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다. 병석에 앓아누운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다소 차도가 생겼을 때 노파가 물로 목욕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문을 걸어닫고 목욕통을 가져다가 물을 채워넣었다. 노파는 목욕통 속에 들어가 헤엄치며 목욕했다. 시간이 오래 흘렀는데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노파는 간데없고 물고기 한 마리만 헤엄치고 있었다. 

  


 


» 물고기가 된 여인.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노파가 물고기로 변했다는, 간단하면서도 황당한 이야기의 전부다.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사실일 리가 없는 이 이야기는 다른 실화와 함께 실제로 발생한 사건으로 간주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연을 기록한 <추재기이>에 이런 환상적인 사건이 실렸다고 해서 책 전체의 진실성을 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추재기이>에 실린 것은 결코 자의적이거나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동서고금의 신화에서 사람이 물고기로 변한 이야기를 자주 확인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물고기로 변신하고, 한국의 동명성왕(東明聖王) 신화에서 하백(河伯)이 잉어로 변신하는 따위가 적지 않다. 신화나 설화에서 이러한 변신 모티브는 아주 중요하다. 19세기의 박물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만물이 다른 사물로 변화하는 일은 많지만 사람만은 그런 일이 없다. 그러나 이무기로, 범으로, 나비로, 물고기로, 돌로 변신하는 경우가 간혹 나타난다”고 하면서 패승(稗乘)이나 유설(類說)에 사례들이 보인다고 했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이 동물 따위로 변신한 기괴한 이야기가 소설이나 야사에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 가운데 인간이 물고기로 변신한 전형적인 이야기는 중국 송(宋)나라 때 편찬된 방대한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등장한다. 당나라 때 사람 설위(薛偉)는 청성현(靑城縣) 주부(主簿)가 되어 부임했다. 병이 든 그는 발열이 심해 견딜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집을 뛰쳐나가 숲을 지나 강가에 닿아 목욕을 하자 갑자기 몸에 열이 나면서 잉어로 변했다. 앞서 본 노파의 사연은 설위의 이야기에 견주어보면, 세부에서는 약간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인 스토리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노파의 사연은 설위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추재기이>에 실린 이야기는 대체로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과 실화를 기록했다. 따라서 조수삼은 적어도 이 노파의 사연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수삼이 젊은 시절에 편찬한 <연상소해>(聯床小諧)란 책에 나온 이야기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는 다름 아닌 미꾸라지로 변신한 노파의 사연이다. 역시 간단하므로 전체를 옮겨본다.

“해염(海鹽) 사람 왕숭(王嵩)의 어머니는 나이가 80여 세로 건강하기가 젊은 시절과 똑같았다. 하루는 욕실로 들어가더니 큰 미꾸라지가 되어 비늘과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헤엄을 쳤다. 그러자 그 아들이 바닷가에 놓아주었는데 꼬리를 흔들고 뒤를 돌아보며 한참을 있다가 물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의당(漪塘) 강사인(江舍人)이 내게 이 사실을 말해주었는데 강사인 역시 해염 사람이다.”


하체가 가렵더니 두 다리가 합쳐져


사건의 배경이 이젠 중국으로 바뀌었다. 조수삼은 여러 번 중국에 다녀왔는데 중국에 가서 사귄 사인(舍人) 벼슬을 하는 친구로부터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다. 구체적 지명과 인명이 제시되어 신빙성이 있음을 과시했다. 물고기가 아니라 미꾸라지로 변신한 것이 더 흥미롭다. 이야기 자체로만 판단하면, 중국에도 이렇게 물고기로 변신한 노파 이야기가 실화로 전승돼왔고, 우연히 북경에서 지인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서 흥미롭게 여겨 책에 기록해놓았다. 공교롭게도 먼 훗날 한양에서 또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에 옮겨놓았다. 사실로 믿기는 어렵지만 이 넓은 세상에 그런 기괴한 일 하나쯤 없을까 하는 심정으로 기록해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수삼 당대에 중국에서 이 이야기가 실제로 전승되었을까? 청나라 시대에 기괴한 이야기를 집성한 책으로는 포송령의 <요재지이>(聊齋志異)와 원매의 <신제해>(新齊諧), 기윤의 <열미초당필기>(閱微艸堂筆記) 삼부작을 꼽는데 대체로 18세기 후반의 저작이다. 우연히 <신제해>를 읽다가 물고기로 변신한 여인의 사연이 기록된 내용을 보았다.

저자인 원매의 조카 원치화(袁致華)가 사천성의 군량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주성(夔州城)을 지날 때 직접 겪은 이야기였다. 그가 성을 지날 때 길거리가 소란스러워 이유를 묻자 사람들이 말해준 사연인즉 이랬다.

아무개 마을의 서씨(徐氏)가 그 남편과 방사를 질펀하게 치른 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여자의 얼굴과 피부는 전과 다름이 없는데 하반신이 물고기로 바뀌었고, 유방 밑으로 비늘이 자라 비린내가 났다.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여자는 울부짖었다. 그 여자는 변신의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잠잘 때 통증은 없었고, 다만 하체가 가려워 긁었더니 점차로 두드러기가 생겼습니다. 어느새 두 다리에 합쳐지더니 굴신(屈伸)을 하지 못했고, 문지르자 물고기 꼬리가 돼버렸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그러면서 부부가 껴안고 통곡하더라고 했다. 조카가 집안사람을 보내 살펴보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자신도 가서 확인할 생각이었으나 공무가 바빠 그냥 돌아왔다.

간단한 줄거리만으로도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듯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여성이 물고기로 변신한 점은 동일한데 다만 변신의 동기가 몸이 아프거나 늙어서가 아니라 격렬한 부부관계였다. 그 점은 이 이야기의 환상성을 배가한다. 물고기로 변화하는 과정이 자세해 아주 그럴듯하다. 원매는 이 사건이 자신의 조카가 직접 겪었고, 그 집안 사람이 직접 확인했다고 함으로써 사실로 믿는 듯한 뉘앙스를 표현했다.

원매가 조수삼보다는 수십 년 전 사람이므로 물고기가 변신한 이야기가 비슷한 시대에 조선과 중국에서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전파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황을 놓고 보면, <추재기이>에 실린 변신 이야기는 중국 쪽에서 건너온 이야기를 조선의 상황에 맞게 각색해 유포한 것처럼 보인다.


홍어를 할머니로 인정할 것인가


그러나 정말 그럴까? 내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다. 물고기로 변신한 노파의 사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 사회에 전승되었다. 유독 물고기 종류가 홍어(洪魚)로 고정되고, 또 한 씨족의 조상과 관련한 설화로 유포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어우야담>에 등장한다.

광해군 때 진사(進士) 유극신(柳克新)은 홍어의 자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정작 유극신은 그 소문을 허황되다고 하기는커녕 실제로 그런 내력이 집안에 전해온다고 말해주었다.

외갓집 고조부 윗대에 나이가 팔십을 넘긴 할머니가 계셨는데 병환이 깊어 한 달을 넘겨 자리보전을 했다. 하루는 자손과 시비들에게 “내가 오래 병을 알아 너무 답답하다. 몸을 씻고 싶으니 조용한 방에 목욕물을 준비하되 누구도 엿보지 마라! 엿보게 되면 식구들에게 불길하리라!”라고 신신당부했다. 별실에 목욕통과 향탕(香湯)을 마련하고 문을 단단히 닫은 다음 다른 방에서 지키고 있자니 물을 뿌리고 파도를 치는 소리가 시간을 넘겨서도 그치지 않았다. 온 집안 사람들이 몸이 상할까 걱정해 별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들어오지 말라고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너무 시간이 오래되어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할머니는 온 몸이 거의 홍어로 바뀌어 있었다.

인간이 아닌 이물(異物)로 바뀐 할머니? 자식들로서는 두 가지가 큰 문제였다. 하나는 홍어를 할머니로 인정할 것인가? 또 하나는 홍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당황한 집안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비록 홍어로 변했지만 할머니의 분신이다. 물고기가 살아 있으므로 할머니가 죽지 않았고, 따라서 장례를 치르는 것은 불가하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 살 수 없으므로 홍어로 완전한 변신을 끝낸 다음 바다에 풀어준다. 변괴에 자손들로서는 잘 대처한 셈이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홍어로 변신한 한 명가집 할머니의 기괴한 사연이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와 인물, 과정이 구체적이고도 그럴듯해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듯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를 지녔다. 더욱이 이 사연은 조상의 내력과 가문의 비밀이라는 요소와 결합해 더 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사연에서 뼈대만 남으면 <추재기이>와 흡사한 이야기로 바뀐다.

조선 후기에는 워낙 <어우야담>이 널리 읽혔기 때문에 홍어로 변신한 사연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귀신담이나 기괴한 사연을 모아놓은 야담집인 <천예록>(天倪錄)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고성군의 시골 늙은이가 병이 들어 물고기로 변신했다’는 이야기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죽음이 두려워 만든 환상일까


당시에 꽤 이름 있는 재상이 고성군수로 재직했다. 어느 날 고을의 좌수가 찾아왔다. 마침 식사 중이라서 군수가 밥상에 놓인 홍어탕 한 그릇을 먹으라고 주었더니 이상하게도 좌수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소식(素食)을 해야 하는 제삿날이라 먹지 못한다며 사양했다. 그러고는 슬픈 표정을 짓다가 그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깜짝 놀란 군수가 사연을 묻자 좌수가 말을 꺼냈다.

그에게는 세상에는 없는 망극한 사연이 있지만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이제야 군수에게 말한다면서 꺼낸 사연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이야기였다. 거의 100살 가까이 연로한 아버지가 언젠가 열병을 얻어서 불덩이같이 몸이 뜨거워지자 자손들은 곧 돌아가실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집 앞에 있는 큰 냇물을 보면 병이 나을 듯하다고 고집했다. 아무리 말려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셈이라”며 화를 내며 요구하는지라 결국 냇가로 데려갔다. 혼자만 있고 싶다고 또 고집해 하는 수 없이 혼자 있게 한 뒤에 다시 와보니 아버지가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홍어로 거의 다 변신했다. 아버지는 물에서 헤엄치다 사라졌고, 자식들은 아버지가 남겨놓은 모발과 이, 손톱을 모아 장사를 지냈다. 그 뒤로 자손들은 홍어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아들들은 남들이 홍어를 삶아 먹는 것을 보면 두렵고 떨리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고백했다.

홍어로 변신한 아버지 이야기는 부모를 향한 애틋한 감정까지 첨가됨으로써 기괴함과 눈물이 묻어난다. <천예록>의 저자는 이 사연을 놓고서 사람이 이러한 변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떳떳한 이치가 아니므로 변괴로 돌려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나로서는 고령의 노인들이 물고기로 변신하는 사연이 특별히 궁금하다. 혹시 죽음이란 생명의 이화(異化)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가 만들어낸 환상이나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죽음에 직면해 차라리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 물이나 바다로 회귀하고픈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나 아닐까?

물고기로 변신한 많은 이야기는 <태평광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렇게 다양하게 변형되면서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사건으로 이해했다. 판타지가 유행하는 현대의 문화공간에서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흥미로운 사연으로 재미있게 볼 여유가 더 많을 것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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