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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시네 -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이수원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8년 6월
평점 :
"한밤에 빛이 있다. 유랑하는 지구 주위에, 그 빛은 다른 곳에서 오나니."
- p27 -
영화는 빛의 예술이다. 제7의 예술이라는 영화를 달빛에 비유하여 아름다운 영화를 사랑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에세이다. 어두운 극장에서 달빛처럼 흐르는 감명 깊은 영화를 감상하는 감동을 사실적으로 그린 점이 특징이다.
"달은 꿈의 별이고, 그 둥근 모양은 은거울 혹은 렌즈, 아니면 영사기의 전기 램프에서 나오는 빛다발을 반사하는 볼록거울이다. 영사기는 달빛처럼 스크린의 백색에 도달하기 전 시간 속 여행을 거친 빛을 발산한다."
- p31 -
저자는 2008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안은 프랑스 작가이며, 조서, 혁명, 황금 물고기 등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관련이 많은 친한파 작가여서 친근미가 있다. 황석영 작가와도 인연이 깊은 저자의 특성은 경계선상에 있는 시선으로 편향되지 않은 글에서 좋은 인상을 주지만, 아메리카 영화에 대한 거론은 극히 적은 편이 두드러진다.
영화 이야기를 산책하며 노래하듯이 멋지게 완성한 이 책은, 영화를 꿈꾸는 작가의 경험이 담긴 애틋한 영화 사랑이 서정적인 문체로 담겨있다. 영화에서 빛나는 물방울로 그린 눈물이 담긴 영화의 평이 그중에서 특히 아름답다.
영화가 시작된 시대인 초기의 채플린에 의해 완성된 무성 영화 시대에서부터 최근의 서울 영화학교 출신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영화관이 녹아 있는 영화 에세이다.
영화가 가진 꿈과 상상력의 속성을 강도 있게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세밀한 분석을 곁들인 영화 비평을 접하게 된다.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문학가의 서정으로 그린 영화평이라 영화를 보는 안목을 넓히는 대중성도 높이 살 만하다.
특히 2차 대전 이후의 일본 영화가 왕성하던 시대의 글은 전쟁을 주제로 하는 일본 영화의 특성을 잘 짚어 낸 점이 인상 깊고, 우케츠 이야기에 대한 감상평이나,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글과 칸 영화제의 2006년 집행 위원장 질 자콥의 진솔한 글이 친근하게 읽힌다.
처음 영화를 처음 접하던 시대의 개인적 체험을 비롯하여 마지막 부분에 우리의 영화감독 과의 인터뷰가 감명 깊게 담겨있다. 우리와의 친숙함이 느껴지는 저자와의 인연이 닿은 번역의 자연스러움으로 배어 나와 더욱 살갑게 만나게 되는 글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다 본 듯한 느낌으로 복수나 폭력을 담은 서울을 그린 영화 이야기나,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 >에 대한 독창적인 감상이 인터뷰 글을 통하여 자세하게 나타난다.
"좁은 시각에서 보면, 서울은 늘 분주하고 혼잡하고 번쩍거리는, 세상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것 같다. 그 군중에서 이정향의 가볍고 연약한 실루엣은 한국 영화가 오늘날의 현실을 바라보는 그 비판적이고 주의 깊고 열정적인 상징 같았다."
- p226 -
저자의 사랑의 시를 쓰는 듯한 특유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자유로운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내용은 단순한 영화 감상을 넘는 영화사 중심으로 흥미있는 주제를 잘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산업이다"라는 말로 정의한 앙드레 말로의 말을 인용한, 이윤을 추구하는 아메리카 영화에 반한 일본이나 인도 영화 등 제3세계 영화에 이르기까지 꿈의 공장으로 일컬어지는 영화의 미래까지 짚어보고 있다.
영화를 얼굴의 예술이라고 한 말도 공감이 간다. 영화의 주된 존재 이유를 얼굴의 표면에서 읽는 인간의 얼굴에서 찾고 있다.
스크린 속의 주된 관심이 주인공과 조연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지는 이유가 빛의 그림자를 통해서 인상 깊은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영화는 인식의 놀이에 의해, 예의 그 달빛으로 납작하고 입자가 진 스크린의 저편에 우리의 낯을, 즉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이러한 욕구를 우리 속에서 발생시킨다."
- p59 -
인용하는 영화가 비교적 영화사에 빛나는 주옥같은 영화를 거론하지만 접하기가 어려운 점 때문에 직접적인 감흥은 적은 편이 아쉽다. 그런데도 눈에 그린 듯이 소개하는 친절한 글은 마치 동행했던 적이 있는 듯한 친숙한 느낌을 준다.
편집 기사 가비에 대한 글이나, 오즈 야스나리의 방에 묵었던 추억에 대한 글 등의 영화 관련 에피소드 글이 영화 주제의 글 사이에 삽입되어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은연중에 비친 것을 느낀다.
영화의 꿈속을 거니는 듯한 영화 이야기는 한국 영화에 대한 특유의 인상을 직접 방문한 인터뷰에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듯이 그려져 있는 이 책을 영화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으로 추천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