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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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라종일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그는 교수보다는 작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독서량에 놀랐고 중학교 때 읽은 소설의 내용까지 세세히 기억하는 모습에 한번 더 놀랐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문학작품들을 대하는 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세상 모든 일의 뒷면을 살피려 하고, 특히 사람의 일에 마음을 쏟는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인터뷰 전에 조금 읽다가 덮어뒀던 <가장 사소한 구원>을 마저 읽었다. 10대에 쓴 <네 멋대로 해라>로 유명한 작가 김현진이 털어놓은 고민에 라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짜인 이 책은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글들로 꽉 채워져 있다.

단순히 '아픈 것도 청춘이다'라며 상처를 받아안으라 하지 않고,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잔잔한 어조로 읊조리고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는 라 교수의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건 나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기 때문이리. 그와 나눴던 따뜻한 대화를 책으로 다시 나눈 기분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삶이라는 것이 험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런 기본적인 인식이 사람들을 지탱해준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경험해야 하는 쓰라림이나 환멸에 대한 가장 큰 약이 바로 삶이란 어려운 것이고 이 세상에서의 장밋빛 기대란 대부분 가당치 않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이었을 것입니다. ... 행복이란 이제, 적어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권리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그 참기 힘든 가벼운 추구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심리학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대개 세상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들은 자기의 바람을 부정하는 세상을 부정하는 행위로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모든 것이 어렵기 짝이 없는 전쟁 상황이나 포로수용소에서는 자살률이 매우 낮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6~27)

이른바 학벌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학생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인정하지 않는 한 열등감은 없다." (40)

사람마다 갖추고 있는 다양한 능력을 한 가지 직장, 한 가지 일에만 국한하여 살면서 거기서 좌절한 것으로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41)

우리는 일생 동안 성장통을 겪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성장통을 치르고 나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 착각이라도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사람으로서 죽은 것이 아닐까요.(47)

사람의 일생이란 결국 자기가 자신에 관해 만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어떤 설득력을 갖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사기꾼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별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48)

<잠언>의 한 구절은 증오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장 32절, 57)

핀다로스가 펠롭스의 전설을 주제로 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을 하지 않고 어떻게 영광과 해줄 이야깃거리가 있는 노년을 맞을 수 있겠는가?"(65)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게 보입니다. 종종 어디서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발생했다든지 전장에서 몇몇 사상자가 났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보듬고 안아 키웠을 구체적인 사람입니다. (97)

음악이란 온몸과 마음을 바치지 않으면 어떤 수준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었어요. 조금만 더 하면 만족할 만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유혹이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 고통스러운 기억밖에 없지만 한동안 악기 하나를 해보려고 노력한 경험은 후회하지 않아요. 다른 분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그런 소리가 저절로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112)

저는 효도란 궁극적으로 부모님에게 잘해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충실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 효의 근본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관한 큰 긍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현세에서는 우선 생명을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관한 큰 긍정 없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177)

항상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185)

지도자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외국에서 날아오거나 어떤 특정한 혈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단지 우리 판단으로 봤을 때 자질과 능력이 훌륭한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우리와 필요나 목적을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186)

결론은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의 온갖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각자의 처지에서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187)

"어떤 슬픔도 그것을 이야기에 담거나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빼앗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배신입니다."(애나 펠스, 240)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갑니다. 때때로 그렇게 묻혀 없어진 이야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한 방향으로 정리될 때 그것이 그 시대 그 사회의 정의이지 않겠는가."(240)

`로봇 다리` 수영 선수로 알려진 김세진 군의 어머님이 김군을 이런 말로 단련시켰다 합니다. "넘어졌을 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붙들어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붙들어 일이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사람 사회의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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