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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 랜덤 워크 - 영화와 음악으로 쓴 이 남자의 솔직 유쾌한 다이어리
김태훈 지음 / 링거스그룹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1990년대는 대중문화 여러 분야가 한꺼번에 폭발하듯 커졌던 시기였다. 그때는 그런 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다. 김건모는 앨범을 2백만장 이상 팔았고, 영화잡지, 음악잡지, 대중문화잡지가 봇물처럼 생겨났으며, 공연도 많았다.
대학로와 홍대에는 클럽들이 생겼고, 영화제에서는 미개봉 영화들을 상영했다.
그 시절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는 즐길거리들이 너무 많아 좋았던 시기였다. 역시 팝 칼럼니스트이자 영화 칼럼니스트, 게스트, 패널, 연애 칼럼니스트 김태훈씨가 읇은 레퍼토리는 그 시대의 폭발할듯 하던 유행 매뉴얼 안에 있었다.
그 시절을 추억하고, 삶의 다양한 편린들 속에 느낀 일상의 자잘한 풍경들을 읽고, 느끼고 그 시절의 음악 한 줄, 영화 속 대사 한 줄을 떠올리는 낭만적인 고백을 읽었다.
솔직한 심경으로는 별로.....
김태훈씨의 표현대로 조악한 글쓰기와 개똥철학이 밝혀진 부분들은 솔직하기보다는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이 글 전체가 수많은 레퍼토리들의 모음집처럼 정말 많은 음악과 영화 이야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 영화와 음악들, 공연들은 그 시대 문화감성 충전을 받았던 세대들에게는 그리 새롭거나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꺼내면 정말
"나는 옛 연인들에게 어떤 남자였을까? 그리고 지금 어떻게 기억될까?" 라든가 "강요된 어덜트 라이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상상의 세계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곳...."
같은 진부한 표현밖에는 할 수 없는것일까?
마흔을 넘긴 나이에 외로움을 호소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영원히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하다거'나 '언제든 다른 대상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은 책임지고싶지 않은 현재를 여전히 즐기려는 나르시스트적인 플레이보이의 현재를 합리화하는 것은 아닐까?
프로에 패널로 나왔을 때나 칼럼에서 간간이 보였던 그의 , '얍삽하게 빠져나가는 말투'를 평소 매우 싫어했던 나로서는 그의 우울하고 공상적이며 자기애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 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징그러운 연애의 고난에 지쳐버리고 나면, 때론 토요일의 낮잠이 훨씬 행복한 법을 알게된다." 는 대답은 외롭다 외롭다 불평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게으른 자기자신을 방치하는사람의 구차한 방어는 아닐까?
철학자 볼테르가 '결혼이란 겁쟁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모험이다' 를 결혼이란 자극없는 놀이동산의 모노레일이다 라는 뜻으로 해석하다니, 그건 그냥 당신의 해석이다. 결국 자기 자신은 그냥 결혼이 두렵거나 책임지기 싫다는 뜻이 아닐까?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간간이 보이는 겸손은 오만보다 더 불손해보이며, 자유로움은 무책임한 태도로, 유유자적한 생활태도는 게을러보인다.
사족으로, 이 책에서 예로 든 몇 가지에 내 식의 이의를 단다.
1. 오쿠다히데오의 소설이 <공중그네> 같이 가벼운 것만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오쿠다 히데오는 <최악>에서 탁월한 구성력에 일본 도시사회의 현실을, <남쪽으로 튀어>에서 일본 전공투 세력의 갈등을 잘 버무려낸 탁월한 수작도 낸 작가다. 가벼운 흥미위주의 소설만 낸 작가가 아니다.
2. 영화 <댓씽유두>에서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음악이 나오자 환호하며 거리를 뛰어다닌 사람 (리브 타일러)는 보기에 따라서 다를테지만 엄밀히 말해 밴드 멤버는 아니다. 매니저 격으로 밴드를 도와주고 있었다.
3. 폐경기의 아줌마처럼 매사에 의혹이 없다.--->의욕이 없다. 겠지. 그리고 폐경기 아줌마가 언제나 의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활기찬 사람도 많다.
4. <와이키키브라더스>가 실패한 뮤지션의 삶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뮤지션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한 명은 계속 음악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명은 아니지만. 연주곡의 리듬을 맞추지 못하는 연주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영화에서 보여준 그들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5.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을 보셨는지? 감독판으로 219분짜리를 보았는데, 재앙이 되었다고할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 이 영화는 걸작이다. 흥행만이 영화 성공의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작가 이지민이 몇년 전 '정보와 정서'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떠한 것이든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이유. 정보와 정서. 김태훈의 책은 '정보'는 아니다. '정서' 쪽에 가까울텐데,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그 '정서' 라는 것도 위와같은 이유 때문에 별로 충족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