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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 1 - 5남매 수재로 키운 포항 농부의 자녀 교육 이야기 ㅣ 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 1
황보태조 지음 / 올림 / 2013년 10월
평점 :
눈에 띄는 몇자를 놓친것 같아 다시 서평을 남긴다.
나를 주눅들게 하는 많은 말들 중에 그래도
"아~~ 그래도 되요? 그럼..나도 좀 위로가 되는데요? "
싶은 구절이 더러 있어 소개할 까 한다.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잊어 버려라
- 본문 168 쪽 ~ 171쪽 -
처음에는 아무리 여러 말로 설명을 하고 한자 공부를 시켜도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한 지 이틀이 못 가서 아이들은 자꾸 잊어버리는 데에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공부한 부분을 자꾸 들추어 보며 또 까먹었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간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전에 공부했던 것을 자꾸 다시 들추어 보게 되니 진도가 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제풀에 지쳐서 아예 공부를 그만두게 됩니다. 여간 끈기 있는 아이가 아니면 이쯤에서 포기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다른 발상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골 사람이 처음 도시에 가서 어떻게 행동합니까? 대개 대도시에 처음 가면 역에서 여기저기를 그저 돌아다니며 천천히 그 도시의 윤곽을 익혀 갑니다. 처음부터 역 주변의 모든 길을 샅샅이 알아 가면서 그 도시 전체를 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역 주변의 작은 골목이 어떻게 생겼건 상관하지않고 대로를 따라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중앙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중앙로를 따라가다 보면 좀 더 작은 길도 알게 되며, 또 이 작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샛길도 알게 되어 나중에는 택시 운전도 할 수 있을 만큼 길을 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 주는 간단한 방법>
나는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철처히 익히면야 좋겠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철저히 하려고 들면 대개 제풀에 지치게 되고,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 번쯤 해냈다 하더라도 다음부터는 그런 힘든 일은 기피하게 됩니다.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면 몰라도, 적어도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수십 년을 해야 하는 것이 공부인데 어릴 때부터 지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교육자들과는 다른 발상에서 아이들에게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잊어버려라"하고 말했는데, 그 효과는 매우 컷습니다.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갖게 되는 마음의 부담을 말끔히 없애 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담 없이 공부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일까요? 그것만 없으면 얼마든지 짜증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요?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부담을 자꾸 지고 가다 보면 더는 지고 가기 어려운 짐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한 권도 다 떼지 못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이 말 속에는 오늘만 재미있게 익히면 된다는, 오늘 익힌 것을 내일은 잊어버려도 우리 엄마 아빠는 절대로 나를 혼내지 않는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저 오늘만 재미있게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오늘만 열심히 하면 그만, 더 지고 갈 공포(걱정)의 짐이 없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한번 본 것리라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늘만 익히고 내일은 잊어버려라"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공부한 것을 다 잊어 버릴까 봐 걱정하는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에 한번 방문했던 도시를 까맣게 잊어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다시 가보면 새록새록 기억들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 익힌 글자들을 내 의지대로 까맣게 잊을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 잊어 버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내일은 잊어 버려야지'하고 마음을 먹는다고 쉽게 잊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라도 잊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첫사랑의 아픈 기억은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지 못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여 우리를 미소짓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잊어버려라" 했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아이들에게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줄여 줄 뿐이며, 쓸데없는 걱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예방책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은 이 근심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책장 넘기는 재미로(진도가 잘 나갑니다) 익히고 외울 것이며, 그러다 보면 어느새 네권을 다 떼게 되어 그야말로 즐겁게 책거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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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기발하지 않은가.
'오늘 배운 것을 잊어 버려도 나는 괜찮아 ....
엄마 아빠가 혼 안 낼거라고 약속했어..
그리고 나는 다음에 그걸보게 되면 기억할 수 있는 아이라고 했어...'
엄마 아빠로부터 허락을 받은 아이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이 신념은 아이든 어른이든
새로운 것을 배움에 두려운 모든 이에게는 분명 단비와 같은 든든함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책들 중에 이런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한 책은 아직 못 만나 보았다.
그렇다면 나도 잊어 버려도 된다는 것이지 않은가..
이 얼마나 체증내려가도록 속 시원한 대답인가...
또 한구절 더
아~~!!!! 그렇단 말이지 싶은 부분이 또 있다.
왜 글을 가르칠 때는 조바심을 낼까
- 본문 185 쪽 -
그런데 문자를 가르칠 때에는 꼭 다른 아이와 비교하게 되며. 그래서 조급증을 느껴 심지어 매질까지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한 살 난 아이나 다섯 살 난 아이나 가르치는데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한 살 난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에는 행복하게 가르치는 데, 왜 다섯 살 난 아이에게는 옆집 아이처럼 잘하지 못한다고 조바심을 내며 글을 가르치는 걸까요? 만약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칠 때 글자를 가르칠 때와 같은 감정으로 가르쳤다면 아이들은 말을 훨씬 늦게 습득했거나 지금처럼 유창하게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짜증은 내면서 '엄마' 소리를 따라 할 것을 강요했다면 아이는 말은 고사하고 울기부터 했을 것입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래전에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한 부부는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우리말과 영어를 같이 가르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자꾸 우리말의 존댓말을 까먹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도록 강요했더니 그다음부터 아이는 우리말을 재대로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조급증은 부모의 마음을 일그러지게 합니다. 아이들은 말이든 문자든 그것에 주목하기보다 부모의 감정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배움을 더디게 하는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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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도중에 큰 아이가 할 일을 제쳐 놓고 또 놀고 있다.
하라고 시켜야 겠는데 늘상 하던대로 하면 또 튕겨 나갈것이 뻔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렸다.
"공부 알아서 잘 하는 우리 지원이!~~~ 어서 할 일 하자~~~"
그랬더니
"알았어~~~"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아이 이렇게 평소에 대답안 한다
물론 엄마도 평소 저렇게 안 했다.
"백 지원!!! 너 할일 다 했어? 지금 그렇게 놀고 있을 때 맞어?"
"........"
평소의 나와 내 딸의 모습이다...
자~~ 나는 책읽는 여자다..
그렇담 읽은 티를 내야 하는데
과연 나의 이런 아이들을 위한 배려는 어디까지 계속 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