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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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먼저 출간되었던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보다 이전에 쓰인
키건의 초기 단편집이다.
영국제도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힐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짧지만 강렬한!’
키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한다.

첫 작품 <작별 선물>부터 그랬다.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그것을 방조하는 어머니.
어린 ‘당신’은 몸을 씻으며 스스로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되뇌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당신’은 아버지의 암망아지를 몰래 팔아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탈출을 감행한다.
어떤 마음으로 그 세월을 견뎠을까? 마음이 아프고,
그래도 떠나는 용기를 내어 다행이다 생각 들면서도,
낯선 곳에서 가진 것도 없이 또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된다.

20페이지가 안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강렬한 이야기였다.
독특하게 ‘당신’이 주인공인 2인칭 시점이 사용되고 있는데,
주인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 그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키건의 주인공들은 다들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는 어린 딸, <작별 선물>
성직과 세속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그녀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성직자, <푸른 들판을 걷다>
아내를 내쫓다시피 떠나보내고 뒤늦게 후회하는 남편, <검은 말>
가족에게 무관심한 남편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버텨나가는 아내, <삼림 관리인의 딸>
외적인 조건은 완벽해보이나 단 하루의 행복한 생일도 맞이하기 힘든 아들 등 <물가 가까이>
상황이나 감정 묘사를 통해 이들의 상처, 외로움 등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데…

<굴복>의 주인공은 이들과는 색다른 면모를 보여
의외의 신선함을 주었다.
차마 펴보지 못하고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편지에
그런 의미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 통보가 두려워 차마 펴보지 못하는 마음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섣부른 예상과 다르게 펼쳐지는 이야기였어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마지막 작품인 <쿼큰 나무 숲의 밤>은
아일랜드 설화와 미신적인 요소들이 많이 담겨있고,
환상문학의 요소도 가미되어 있어
다른 작품과는 또다른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이야기와 <삼림 관리인의 딸>에는
각각 염소와 개의 시점에서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람못지 않게 동물들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 편의 소설집 안에
일관되면서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쓸쓸한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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