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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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드라마 제작사 기획 pd로 일하다가
제1회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배상민 작가의 4번째 장편 소설이다.

작가는 전작 <<조공원정대>>, <<콩고콩고>>, <<페이크픽션>>, <<복수를합시다>> 등을 통해
“유머러스하면서도 현실을 비트는 통렬함으로,
현실과 서사의 틈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현실의 문제를 환기시켜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9
고려 말은 소문의 시대였다.
밖으로는 왜구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안으로는 이인임, 임견미 같은 권신들이 득세하여 활개를 치는 통에 조정이 어지러웠다.
나라 꼴이 이러하니 무수한 소문이 떠돌 수밖에 없었는데,
원귀와 괴물에 관한 것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자는 원귀에 대한 소문을 낳았고,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한 자는 괴물에 대한 소문을 낳았다.
그렇게 한번 태어난 소문은 용케 살아남아 서로 이어지고,
스스로 살을 붙여 마침내 온전한 이야기로 그 꼴을 갖추곤 했다.

주인공 ‘나(정덕문)’는 사대부 집안 출신이지만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에 오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소문과 이야기에 매혹되어 사건이 발생하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일년에 서너 달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금행’은 난세에 먹고살기 위해 군졸이 되었으며, 전쟁터에서 성과를 올려 ‘나’의 마을에 감무(고려시대 하급 지방관)로 오게 된다.
마을에는 구미호가 나타나 사람을 참혹하게 죽이고, 이를 수사하는 감무들은 연이어 관아에 나타난 귀신에게 목숨을 잃는다…


작가의 전직이 드라마 제작사 기획 pd여서 그런지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주인공의 구성도 그렇고 - 겉으로 보면 한량인 듯하나 잠재된 포텐이 있는 주인공과, 뛰어난 무예 실력과 충직함으로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서브 주인공,
주인공의 좌절과 각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그리고 러브 스토리 한 스푼까지…
시작하면 다음 화를 클릭하게 되는 흥미진진한 장편 드라마 한 편을 뚝딱 보고 난 느낌이다.

구미호, 처녀귀신, 불가사리, 삼족구 등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전설의 고향’ 캐릭터들을
하나의 큰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버무려 넣어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살이 붙고 살아 돌아다니다가 소멸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시대에는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 사람의 혼을 뺏는 처녀귀신은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한 번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그 실체를 숨기며 유튜브, SNS 등의 매체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어
사람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심어주곤 한다.

작가는 전작들에서 현실과 서사의 틈 사이를 파고 들며
현실 문제를 환기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번 작품도 이런 면에서 같은 맥락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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