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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 한 청년 수도자의 12년 수행기
김선호 지음 / 항해 / 2024년 1월
평점 :
13년 조금 못 채운 기간, 작은형제회 소속 수도자로 살았다. 그 시간 중 힘들고 아픈 시간은 있었어도 헛된 시간은 없었다. 머무는 것만으로도 지복이었다. 수도원을 떠난 몸이지만 그 안에서 달릴 만큼 달렸고, 웃을 만큼 웃었고, 아플 만큼 아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는 열아홉에 수도원에 입회해 13년을 지낸 저자의 수도원 생활과 그곳에서의 성장을 담고 있다. 지원기 (수도원의 첫해), 청원기(둘째 해)를 지나 수련기 (1년) 그리고 유기서약 (4년)의 기간을 지나, 종신 서약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에피소드에는 재미도 있고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이 저자가 그냥 일반인이 아닌 초등 교사이자, 작가, 유튜버라는 것이다.
영상을 즐기지 않아 유튜브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저자의 책은 읽어본 적이 있어, 낯설지 않고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수도원에서의 13년이라는 생활이 저자의 지금의 삶의 원동력이 되고, 받침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을지도, 그래서 '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열아홉에 수도원에 들어간 저자는 수도원에 들어가면서도 '수도자'가 뭔지 몰랐다. 그냥 '신부'가 되려고 어린 시절 본 성당 신부님의 모습이 멋있어서 수도원에 들어갔다. 주임 신부님처럼 굳은 표정의 무서운 사제가 아니라, 사탕을 나눠주는 젊은 보좌 신부님처럼 착한 사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수도원 생활은 영화에서 보듯 감상적이거나, 매사가 거룩하지는 않았다.
수도원에서의 지원기, 청원기 시절은 저자가 열아홉, 스물인 만큼 술, 담배 이야기, 화장실 청소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가득 있다. 그리고, 사막체험에서의 노숙자 체험과 긴 사막체험에서의 무전여행은 재미있기도 하고,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사막체험에서의 하루 동안 거지 체험을 하는 젊은 수사였기에, 노숙자 생활로 얻는 동전과 지폐들은 내 몫이 아니었다. 진짜 어렵게 사는 이들을 위한 돈이었다.
그리고 긴 사막체험, 수도원에 들어온 첫해 여름, 긴 사막체험이 시작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를 기념하는 성지를 거점 삼아서 보름 동안 이동하고 도중에 형제들을 만난다.
버스에 올라타서 돈이 없으니 태워달라 하고 마을에서 밥도 얻어먹었다. 하루 동안 걱정스러운 말도 들었고 따뜻한 밥도 얻어먹었다. 무전여행으로 알게 된 건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또 많은 시간 혼자 걸으면서 나와 대면할 수 있었다. 홀로 오랫동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는 눈물이었다. 한창 등산에, 걷기에 빠졌을 때 홀로 걸으면서 마스크 속에서 울음이 터지기도 하며, 어제 있었던 상처받은 일을 생각하고 또 그런 나를 위로했다. 복잡했던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발걸음만큼이나 내 머릿속도 가볍고 개운해졌다. 아마 저자는 내가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무전여행으로 인해 느꼈던 듯하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고 두 번째 무전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무전여행에서의 중요한 건 ' 혼자 있는 시간'이다.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났던 술 취한 아저씨와의 하룻밤으로 인해 세상의 그림자는 숙제처럼 저자를 각성시켰고, 어둠은 생각보다 무섭고 깊으며, 절망이라는 단어는 깊숙이 박혔다.
이후 수련기의 시간에서는 농사를 짓기도 하고, 의미 있는 꿈을 꾸기도 한다. 수련기 시절 일주일간의 단식의 경험으로는 지금 쥐고 있는 것을 좀 더 쉽게 내려놓기도 한다.
유기서약기의 시간은 4년이라는 긴 기간으로 인해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한다. 필리핀에 가고, '밥집'이라는 곳에서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가방에서 아기를 돌보기도 한다.
종신서약 전 선배 형제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배우는 것이다. 교육과 실전은 삶의 격차가 크기에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고 판단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저자는 1994년 1월 16일 수도원에 입회해 2005년 6월 25일 수도원을 떠났다. 열아홉에 들어와 서른이 갓 넘은 나이까지 청춘을 수도원에서 지냈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그 나이에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하는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저자의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성장과 변화를 통해 나를 찾는 시간이 되었고,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았을까?
요근래 마음이 복잡했는데, 이 에세이 한권에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문장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게 되고, 지금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수도원 생활이라는 에세이이지만, 그 수행의 과정을 읽으면서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필리핀과 티베트의 순례기는 가난과 죽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성대서약 기간의 순례기는 인간의 본질적 두려움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수도원 생활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 에세이를 꼭 읽기를 권한다.
마음이 복잡할때,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 만으로도 안정이 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무겁지 않지만, 삶의 무게를 다시 한번 가벼이 하고 싶을 때 필사를 권하고 싶다.
-필사하기 좋은 문장-
'배고프다는 것은 내가 존재함을 감각적으로 함축한다'
'사막 체험이라는 이름은 참 의미가 깊다. 심리적으로 해석하자면 사막에 홀로 있듯 나와 직면한다는 뜻이고, 가톨릭 신앙적으로는 온전히 신을 향한 시선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리적이든 신앙적이든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인간적으로 배가 고팠다.'
'그저 오늘 하루 어떻게 배고픔을 채울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뒷전이었다.'
'두려움이란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워 이곳에서 쫓아낼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동전에서 그사람의 체온이 느껴졌다. 동전 하나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전을 주고 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적어도 그들이 오늘 하루만큼은 세상 걱정에 휩싸이지 않고 행복한 하룰르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 약 보름동안의 무전여행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구걸해서 얻어먹고 잠자고 이동하는 것은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구걸하는 것은 부끄럽기는 해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 하다보니 금방 얼굴에 철판이 깔리는 듯 했다. 오히려 무전여행으로 알게 된 건 살아가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
'꿈이라 하기에는 방에 비치던 햇살과 창문 너머 들리는 일상의 소리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수도원 성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검은 그림자를 위해 기도했다. 나를 누르던 그 손끝에서 검은 그림자의 한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어느 한곳에 고착된 내 무의식을 바라보고,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단지 힘이 세지고, 신체가 발달하고, 능력을 갖추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장일 뿐이었다.'
'땅에 깊이 박힌 보석은 깊게 파야 얻을 수 있따. 다른 방도는 없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존재의 그림자를 건드려보기 위함' 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자기도 모른체 '존재의 그늘에 앉아서 쉬는 사람'이다. 이렇게 존재는 우리 둘이 일정한 경게를 유지 한 채 하나의 시선을 갖도록 해준다. '
'시원한 물을 마셔본 자와 시원한 물을 바라보기만 한 자는 우주 그 이상의 차이가 있다.'
'홀로 거니는 시간만으로도 이상하리만큼 내 안에 에너지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자연과 함께 자연스레 교감이 이루어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