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리아의 나라》⠀앤 패디먼 글이한종 옮김반비출판사⠀.#리아의나라 는 몽족의 한 아이가 미국의 의료체계와 몽족의 주술적인 치료 사이에서 나타난 문화적 충돌의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몽족은 라오스 출신의 고산민족으로 베트남전쟁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난민이 되어 미국에 왔다.리아의 부모는 태국과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그 과정에서 죽은 아이들도 있었고 리아는 미국 머세드 커뮤니티 의료센터(MCMC)에서 태어났다.⠀1982년에 태어난 리아가 3개월이 되던 때 뇌전증이 발생했다. 리아의 부모는 문소리에 놀란 혼이 리아의 몸을 떠나버린 것이라고 여기면 '코 다 페이'라고 생각했다.몽족은 코 다 페이를 영예로운 병으로 여겼으며 뇌전증 환자는 흔히 샤먼이 되었다. 발작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증거로 여겼기에 리아의 발작을 바라보는 리아 부모의 태도엔 걱정과 자부심이 함께 공존했다..리아는 MCMC에서 뇌전증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영어를 모르는 리의 부부는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주 바뀌는 라아의 약을 처방대로 먹이는게 어려웠다.라아의 발작은 더 심해졌고 투약 지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리 부부의 모습은 의사인 닐에게 아동 학대로 보여지게 되었다. 닐은 리아 부모를 아동보호국에 신고하게 되고 리아 부모는 양육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로인해 리아는 6개월간 위탁가정에서 돌보게 되었다.리아가 집으로 돌아온 뒤 리아 부모는 소를 잡고 넹 의식을 치렀다. 그리고 위탁 가정에 있는동안 약을 너무 많이 줬거나 리아가 부모가 보고 싶어서 이상하게 됐다고 생각하며 누가 와도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잘 못한다고 여겼다.⠀그러나 의사인 닐과 페기는 위탁가정으로 오기전부터 리아의 지적발달은 내리막길을 걷기 사작했으며 위탁 가정에서 처방대로 약을 먹는 동안 잠시 중단되었다가 일주일동안 집으로 돌아 간 뒤로 겪은 발작으로 악화되었다고 보았다. 그 일주일 사이 리아의 부모는 약을 전혀 먹이지 않았던 것이다.⠀.리아의 부모는 '약간의 약과 약간이 넹'을 병행하는 것을 강하게 원했으며 자기들이 제대로 하고 있고 의사들이 타협을 모른다고 생각했다.1986년 11월 25일 리아의 대발작은 거의 두 시간 동안 지속되었기에 소아 집중치료실이 있는 프레노이즈의 밸리 아동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리아는 뇌사 상태가 되고 그로인해 생후 3개월부터 지속되었던 뇌전증은 끝났다. 의사들은 리아가 곧 사망할거라고 했지만 리아의 부모는 리아를 집으로 데려가길 원했다.금방이라도 죽을 줄 알았던 리아는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살아났으며 2012년 8월 31일 서른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리아는 사지 마비와 뇌성 마비에 대소변을 못가리는 '식물인간' 상태였지만 리아의 부모는 온 사랑을 쏟으며 가족 또한 리아를 사랑했다.⠀.#리아의나라 를 보면서 리아의 발작 상태가 그려지면서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을지 짐작이 갔다. 항경련제를 임의로 먹이지 않거나 더 많은 용량으로 먹인 리아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리아가 제대로된 용량의 약을 먹으며 치료했다면 어땠을까?리아 부모와 의료진 사이에 몽족 문화를 이해하며 통역해 줄 수있는 통역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책을 보는 내내 들었다.⠀몽족은 서로 잘 돕고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데 헌신적이며, 자신들만의 장소에 대한 의식이 강하고, 몽족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큰 사람들이다.이런 리아부모에게 전통의식보다 현대의학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했던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뇌전증을 앓는 아이를 위해 전통의식을 따르는 부모와 현대 의학 사이에 있었던 비극을 통해 문화충돌, 난민, 다문화... 여러 방향으로 생각 해 볼 수 있게 하는 #리아의나라⠀우리나라도 이제는 많은 국제 결혼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기에 다양한 문화를 대하는 마음의 여유와 문화적 소통, 언어적 소통이 중요한 부분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리아의나라 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