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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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집어든것은 3년전이었다.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온건했기 때문인지 이 책의 노골적인 성묘사에 질려 한 번 읽고 책장에 넣어버렸다. 문학을 가장한 포르노가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꽤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봤을 때는 소설 속 캐릭터들에게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무심하고 무뚝뚝한 와타나베에도, 왈가닥 미도리도, 털털한 아줌마 레이코에게도, 또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순정만화의 주인공같던 나오코에게도.

주인공 와타나베는 곁의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을 자살로 계속 잃게 된다. 그 경험에서 그는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라고 쓴다면 거짓말에 불과하다. 사실 나는 이런 걸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꼈다고 생각했더라도 그건 머리로 꾸며댄 말에 불과하다. 적어도 이 책은 머리를 굴려가며 읽고 싶진 않다.

심심할 때면 이 책을 아무데나 펴들고 그 페이지를 쭉 읽는다. 하루는 레이코 여사의 파란만장한 일생기를 읽고, 하루는 미도리의 장례식 체험기를 읽는다. 하루는 나오코의 내숭짓을 읽기도 한다. 읽을 때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분위기와 느낌으로 문장을 감싼다. 특유의 그 서늘한 분위기도 감돈다. 무엇 하나 확실하게 정리되지는 않지만 느낌은 나쁘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내게 이 책은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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