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힘들고 두려운 이유는 쓰는 사람이 대상을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대상(작품)이 아니다. 글로 쓴 대상을 공부하기 전에 글을 쓴 사람을 추적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재현이 ‘누군가가 쓴 것’임을 인식하고,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 쓴다’도 중요하지만 ‘나’는 매 순간 변화하고 움직이는 존재임을 각성하고 있어야 한다. 안정된 존재가 쓴 글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안정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성립 가능하다면 그 안정은 기득권 속의 안정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정한(unstable) 상태를 존중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과 연대하고 싶다.

모든 언어는 현실보다 늦게 당도한다.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시간차를 메우려는 예언자는 사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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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16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드포에 이어 정희진 읽는 대디 님, 좋네요! 후훗.
:)

DYDADDY 2023-11-16 12:16   좋아요 0 | URL
정희진 선생님의 책들을 읽다가 <페이드 포>를 읽었어요. 일하면서 틈틈이 읽다보니 속도가 잘 안 붙어서 하루에 한 편씩 읽는 다락방님이 부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