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가 제시한 자본주의의 정의는 경제에 국한된 기존 관념의 경계를 과감히 뛰어넘는다.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관념이 아닌 사회, 정치를 포괄하는 하나의 제도화된 사회질서이며, 기존의 개념인 ‘착취’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적 재생산, 공적 권력의 수탈을 통해 유지된다. 그 경계의 분할을 통해 그 관계를 고착하면서 성장하지만 4D 모순(분할, 의존, 책임회피, 불안정성)으로 자신의 꼬리를 먹어가는 우로보로스처럼 결국 파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도 함께 파멸할 것이기에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헤게모니 즉, 생태사회주의가 필요하며 이는 각각의 분할된 운동이 하나의 연대로 나아갈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프레이저의 이론은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을 현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이론이며 현실의 문제 분석과 미래 예측에 공감할 수밖에 없지만 책에서 제기되지 않은 세가지 문제가 있다. 첫번째는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주의라는 타자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로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삶 안에서 살아왔기에 그 이상을 꿈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세상이 우물인 것이다. 그러한 세대에게 눈 앞의 현실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할 때 가능할 것인가. 두번째는 인간의 이기심은 절대 시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차별과 혐오를 만들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지구를 끓게 만든다. 과연 인간은 그런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프레이저가 제시한 사회 운동의 유기적 결합이다. 그 결합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 인간은 둘만 있어도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 많은 사회 운동의 평등한 결합이 가능할까. 프레이저의 그 이론은 훌륭하지만 그 이론을 실천으로 끌고 가는 것은 인간이기에 실현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다.

프레이저가 분석한 현재의 문제점은 더 가중될 것이다. 좌파가 세대와 이기심의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정치와 자본주의는 한 몸이 되어 고대 종교와 같은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런 힘을 가진 세력을 과연 민중이 제어할 수 있을까. 우리는 트럼프와 윤석열의 당선을 보았고, 자신의 세력을 위협하는 장관을 파멸로 몰고간 검찰을 보았고, 생활고에 절도를 한 사람이 경제인보다 더 높은 형량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탄소 배출권이나 탄소 거래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감추어진 자본의 확대를 보고 있다. 과연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저가 제시한 방향이 옳다고 믿기에 인류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불렸던 소비에트 연방은 평의회 기반이 아닌 스탈린과 공산'당'의 독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회주의 공동체(국가가 아닌)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도래하지 않을 유토피아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방향으로 노를 저어 나가는 것이 자칭 '빨갱이'의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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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5-18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기로 했는데,,, 언제 읽나 싶네요. 읽고 싶었던 책이예요.

DYDADDY 2023-05-19 00:41   좋아요 3 | URL
어느정도 시의성이 있는 책이지만 내포하는 사상이 시대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어 당장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읽으면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의 책이에요.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

2023-05-19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9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