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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 더 락 창비시선 535
고선경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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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은 창비(@changbi_insta)의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저자는 애정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의 훌륭한 사회학적 보고서이자, 감정의 잔여물을 정밀하게 계량하는 현대인들의 서글픈 자화상을 표현합니다. 낭만이 탈각된 차가운 현실의 얼음 위로 ‘진심’이라는 독한 술을 부어 내림으로써, 우리 시대가 상실한 것들의 목록을 가장 세속적인 언어로 증명해 냅니다. 파괴를 무릅쓰고 기꺼이 잔을 들이켜는 자의 통쾌함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이 매혹적인 시집은, 환멸의 조류에도 끝내 무언가를 갈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맹목성을 서늘하고도 아름답게 직조합니다. 더불어 전통적인 서정시가 수호해 온 ‘초월적 사랑’이라는 운치 있는 환상을 철저히 해체하며,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생존의 조건에 종속되어 버린 청춘의 내밀한 비애를 서늘한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 시단이 마주한 징후적 현실을 가장 노골적이고도 감각적인 방식으로 투사합니다.


#러브온더락 #고선경 #텍스트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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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나보다 일을 잘할 때 교양 100그램 11
김대식.김혜연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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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은 창비(@changbi_insta)의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기술의 발전 곡선이 인류의 적응 속도를 아득히 추월한 2026년, 우리는 ‘노동의 종말’이라는 막연한 디스토피아가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되는 임계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창작의 문법을 해체하고, AI 에이전트가 지식 노동의 구조를 재편하며, 피지컬 AI가 물리적 노동의 현장마저 대체해 나가는 현상황은 단순한 산업 혁명을 넘어선 인류 실존의 위기이자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뇌과학자 김대식과 안무가 김혜연의 대담을 엮은 『AI가 나보다 일을 잘할 때』는 이 거대한 구조적 격변 앞에서 인간 노동의 본질과 ‘능력’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묵직한 통찰서입니다. 본서는 단순한 기술 동향 보고서나 얄팍한 처세술을 넘어, 다가올 10년의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철학적·사회학적 진단을 제공합니다.


과학적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찬사나 섣부른 공포를 배제하고,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서 인간의 ‘쓸모’를 묻는 태도는 대단히 본격적이기에 ‘교양100그램’이라는 시리즈의 물리적 가벼움과는 대조적으로 해당 도서에 담긴 사회적 함의와 철학적 무게감은 상당합니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현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상수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노동의 주체에서 결정의 주체로 진화해야 하는 이 중대한 과도기에서, 일과 자아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고민하는 모든 지식인과 실무자들에게 가장 든든한 사유의 기반을 부여할 것입니다.


#AI가나보다일을잘할때 #김대식 #김혜연 #텍스트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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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1등급 고미정이 망하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우신영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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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은 우리학교(@woorischool)의 리뷰어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투명한 감옥, 집착의 고원(高原)

대치동은 대한민국 서울의 한 좌표를 지칭하지만 정작 우리가 목도하는 실체는 인간의 욕망과 공포가 결착되어 빚어진 거대한 ‘증류기’에 가깝습니다. 유년의 천진함과 청춘의 생동을 정제하여 미래라는 신기루를 향해 오직 등급이라는 결정체만을 남기려는 오묘한 연금술의 현장. 우신영의 필치는 이 견고한 콘크리트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을 관찰자가 아닌 함께 숨을 참는 동행자의 시선으로 고밀도의 압박 속에 갇힌 개별 단면들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포착해냅니다. 지도 상에서는 그저 강남의 한 구역으로 명시되는 만큼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되어 있으나 실상은 타인의 기대를 동력 삼아 밤마다 자아를 소각하는 ‘침묵의 화로’입니다.

하얗게 바스러진 마음의 잔상

아이들은 반항이라는 치기 어리고 패기 넘치는 날갯짓조차 잊은 채 ‘박제된 새’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 살 무렵부터 시작된 가혹한 질주는 그들을 성숙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일찍 노화하게 했을 뿐입다. 무언가 타오른 뒤 남겨진 잔해는 더 이상 뜨겁지 않듯이 ‘재(灰)’라는 시린 비유가 이야기를 사무치게 관통합니다. 열정의 부재나 단순한 나태가 아닌 과잉된 연소 끝에 도달한 무감각의 상태를 대변하는 주인공 고미정의 시니컬한 독백은 사실 무너져 내리는 내면을 지탱하려는 처절한 지팡이입니다. 편의점의 고열량·고카페인 음료로 혈관을 채우고 가출의 종착지로 스터디 카페를 택하는 촌극은, 오늘날 청소년들이 겪는 번아웃이 ‘정서적 기아 상태(고갈)’임을 물리적 실재로 드러냅니다.

맹목적 투쟁의 쳇바퀴가 삼켜버린 요람

작가는 아이들의 고통만을 단편적으로 조망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시선을 확장하여 이 기이한 생태계를 지탱하는 주변인들의 속사정까지 가감 없이 들춰냅니다. 학원가 뒷골목 전당포에 명품 가방과 함께 자신의 불안을 저당 잡힌 부모들, 학생들의 누렇게 뜬 안색에서 시대의 병증을 읽어내는 강사의 시선은 이 애사의 입체성을 완성합니다. 대치동은 아무개의 악의로 굴러가는 기계가 아니라, 모두가 두려움이라는 유령에 쫓겨 상대를 갉아먹으며 갈무리된 웅장한 유토피아적 연옥입니다. 전원이 각자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서로를 연료로 소모하는 서글픈 순환의 고리를 방불케 합니다. 그 처참한 뫼비우스의 띠에 편승된 새싹들의 행복은 언제나 ‘보다 발전된 내일’이라는 가상의 환각을 위해 무참히 유예됩니다. 저자는 냉소적인 시선 끝에 다정한 연민의 필터를 씌워,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 속에 섞인 비릿한 눈물까지 정직하게 기록합니다.

느슨한 행진을 포용하는 토닥임

해당 서사가 건네는 위로는 값싼 낙관이 아닙니다. 도리어 대중들이 삶의 지독한 쓴맛을 정면으로 응시하도록 유도합니다. ‘탈출’이라는 극단적 해방구가 아닌, ‘보폭 수정’이라는 현실적 구원을 제안한다는 부분에서 우리는 소설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기심에 의해 빈틈 없이 설계된 트랙을 벗어나는 행위가 곧 소멸로 치부되는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어긋남의 미학이 논파됩니다. 정해진 동일한 결승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지 않아도, 군중의 속도에 질식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나직한 읊조림. 시스템을 파괴하라는 선동이 아니라, 냉혹하게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속수무책으로 파묻히지 않도록 기어이 자신만의 작은 오아시스를 구축하라는 또는 도피처를 찾으라는 다정한 권유입니다. 덜 자랐거나 혹은 지나치게 웃자라 버린 존재들이 개개인만의 고유한 그늘에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문장마다 쉼표를 찍어 그들의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끝내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 대신 조바심의 파고를 넘어서는 부표 하나를 띄워 보내는 본 작품은 순위 매기기에 함몰되어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 ‘미정’들과 마주하는 쓸쓸하고도 깊은 눈맞춤입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됩니다. 1등급이라는 숫자가 보장하는 안온함보다, 비록 휘청거릴지언정 자신만의 페이스로 내딛는 지면의 감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잿더미 속에서도 기어이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절망의 끝에서 다시 시작될 누군가의 유일무이한 계절을 예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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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파란 - 제19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47
유지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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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은 창비(@changbi_insta)의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맹목적인 전진을 멈춰 세운 찰나의 멈춤은 낙오가 아닌, 규격화된 삶의 외곽에서 비로소 발견한 '자아의 민낯'입니다. 타인이 정해둔 과녁에 맞추려 스스로를 짓눌러온 가혹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내면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대면할 때, 흩어지는 호흡들은 순위 경쟁에서 탈락한 흔적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황홀한 산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이야기는 하강의 궤적조차 나만의 항로로 끌어안는 '주체적 회복'의 과정을 보여주며,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던 목소리를 잠재우고 오직 본연의 리듬으로 숨 쉴 수 있는 '존엄한 해방'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파란파란 #유지현 #텍스트Z #창비청소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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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창비청소년문학 14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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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유익을 위해 스스로를 휘발시키는 자들을 ‘호구’라 명명하며 조롱하는 계산적 합리주의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거절의 수사학을 상실한 채 손해를 감내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기꺼이 ‘낙오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깁니다. 그러나 김민서 작가의 서사는 이러한 속물적 문법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세속적 승리의 자장에서 망명한 한 노인과 그 자취를 추적하는 손주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품격이 ‘획득한 성취’가 아닌 ‘정직한 소진’에서 기원함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비루한 일상에 대한 소묘를 넘어, 마멸되어 가는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헌사하는 장엄한 실존적 비가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생의 농밀함을 추구하겠다는 주인공의 의지는 이 텍스트에서 가장 전율적인 관점의 전회를 보여줍니다. 현대인은 ‘긍정의 의무’ 아래 유폐되어 있으며, 안락한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우울은 교정되어야 할 오류로 치부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 강요된 희열을 거절하고, 자신의 고독과 결핍이라는 ‘수직적 심연’으로 하강하여 침잠하기를 자처합니다.

먼지 쌓인 밀실에서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미안하다는 고백은 단순한 사과를 초월합니다. 그것은 평생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페르소나에 가려져 정작 내면의 진실을 유기해 왔던 자기 소외에 대한 뼈아픈 성찰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선량함’ 혹은 ‘유능함’이라는 외피를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울음을 짓밟아 왔습니까. 저자는 이 고해의 과정을 통해 독자를 거울 앞으로 정중히 소환합니다. 타인에게는 관대했으나 정작 자신에게는 가혹했던 모든 ‘물렁한 영혼’들에게, 이제 그만 가해를 멈추고 본성 그대로의 나를 조우하라고 권유합니다.

결말을 장식하는 ‘불계패’라는 은유는 작가가 도달한 철학적 정점입니다. 집 수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돌을 거두는 행위는, 세상을 지배하는 평가 시스템으로부터의 자발적 탈주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계산하지 않겠다는 결단은, 자신의 생애를 교환가치가 아닌 절대가치의 영역으로 전이시키겠다는 의지입니다. 인생은 타인의 규격에 맞춰 자신을 구겨 넣는 과정이 아니라, 비록 해지고 상처 입었을지라도 온전히 펼쳐 보임으로써 완성되는 것임을 소설은 역설합니다. 호구는 오히려 타자의 슬픔을 수용하는 넉넉한 기명이자, 냉소에 부러지지 않고 휘어질 줄 아는 유연한 강인함의 증거로 치환됩니다. 고단한 나그네길을 마치고 비로소 평온에 든 노인의 뒷모습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불계패’를 선언하며 진정한 자유의 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여정이 효율적이지 못하고, 더디며, 때로는 착취당하는 듯하여 무력해질 때 이 문장들을 기억하세요. 당신이 비워준 그 자리들이 사실은 타인의 심신이 안식할 마지막 처소였음을, 그리고 행복이라는 강박 없이도 충분히 깊은 당신의 생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경이로운 수였음을 이 기록은 방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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