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 달린 법랑 욕조가 들은 기이하고 슬픈 이야기
미겔 본푸아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간 테레즈는 남편의 내면에 아물지 않은 침묵의 상처가 남아 있음을, 부주의한 동작. 예기치 못한 냄새, 걸맞지 않은 말 한마디가 그 상처를 헤집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내밀한 상처의 아픔으로 가득찬 라자르의 서툰 침묵 속에서 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전쟁의 끔찍한 고통과 불안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라자르의 마음속 희생과 경외의 정신을 전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p.061

"지금 우리는 분명 모든 종족이 함께 살 수 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잖습니까."
그때만 해도 테레즈는 아우칸의 말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잘 아는 그녀였지만, 정작 그 말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암시라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p.134

마르고는 일라리오의 절망을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아버지 라자르 롱소니에가 헬무트 드리히만으로 인해 겪은 것과 똑같은 딜레마에 처했다. 죄를 저지를 것인가, 비겁자가 될 것인가.
p.150

5월 21일, 롱소니에는 운명의 장난으로 발파라이소에 내렸다.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은 프랑스로 싸우러 떠나게 될 아들 라자르의 용기, 비행기를 몰고 영불해협 상공을 날아다닐 마르고의 용기, 고문을 당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을 일라리오 다의 용기 못지않은 대단한 용기였다.
p.250


한세기에 걸친 프랑스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라는 소개글에 살짝 겁을 억었었다.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닌 잘 알지 못하는 타국의 이민자 이야기인데 한세기동안의 이야기라니..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괜한 기우였다는걸 알았다.
의도치 않게 프랑스에서 칠레에 정착하게 된 라자르 롱스르소니에의 시작내용부터 너무 흥미로웠고 그의 세 아들이 전쟁에 참전하고 그곳에서 두형제가 사망하고 첫째인 라자르만이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 내용까지는 짧지만 강렬해서 완전 푹 빠져들게 만들었드랬다. 칠레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난 세명의 남자아이들은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막연한 환상만 갖고 있었을텐데..직접 전쟁에 참여하며 본 프랑스는 자신들의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이었고.. 우물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던 독일군과 프랑스군..라자르는 자신과 같은 곳에 살던 이웃이 자신처럼 나라를 위해 참전했지만 서로 다른편이었던 헬무트 드리히만을 만나고 그가 전해준 기습공격 이야기에 인간적인 고뇌에 빠진다. 그의 말처럼 혼자만 아프다고 남아있을것인지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함께 맞설것인지..동생들에게만 말할것인지..하지만 나였다해도 나의 조국을 위해 상관에게 전할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로인한 결과는 자신을 도와준 헬무트 드리히만을 죽게 만들고 그 죄책감과 전쟁에서의 모든일들은 평생 트라우마가 될수밖에 없었을꺼다.
전쟁에서 두 아들을 잃은 엄마가 살아돌아온 큰 아들의 메달이 과연 무슨소용이었을까..그 메달을 모두 녹여 반지로 만들어 죽는 그날까지 빼지 않은 그 마음...에휴...
지금처럼 정신과가 많이 있고 자신의 마음이 아프다는걸 알고 치료를 받았더라면 참 좋았을텐데..그런 시기가 아니었다는것도 너무 속상했다.
25년후 자신의 딸인 마르고가 '프랑스를 위해 싸우러 갈래요.'라는 말을 꺼냈을때 라자르는 얼마나 말리고싶었을까..
아우칸의 허무맹랑한 공중부양 이야기에 온 마음을 뺏겨 인생이 결정된 마르고를 보고서..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았는데..그로 인해 마르고가 비행사가 되고 일라리오 다를 낳게 되기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아우칸의 말에 귀기울였던게 운명이었던건가..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1인 ^^
이 책의 제목이 왜 '네 발 달린 법랑 욕조가 들은 기이하고 슬픈 이야기'인지 책을 다 읽고나서 이해하게 된다.
몇번의 전쟁과 쿠테타를 겪으며 라자르.마르고.일라리오 다 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어서 전쟁영화를 보는듯 했고..
라자르의 평생의 마음속 빚이었던 '헬무트 드리히만'이라는 유령의 등장과 전쟁에서 일라리오의 죽음을 목격하고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돌아온 마르고와의 첫날밤으로 심신까지 하게 되는 장면은 기이하게 느껴졌다.
한쪽 주머니에 30프랑과 다른 쪽 주머니에 포도나무 한 그루를 넣고 프랑스로 떠나왔던 롱스르소니에로부터 그의 증손자인 일라리오 다가 역시 한쪽 주머니에 30프랑과 다른 쪽 주머니에 포도나무 한 그루를 넣고 다시 프랑스 땅을 밟으며 끝이 나는 이야기. 이민국 직원이 잘못 알아듣고 '롱소니에'가 되었지만 자신의 의지로 '미셸 르네'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일라리오 다.
그의 삶을 조용히 응원해 본다.

#네발달린법랑욕조가들은기이하고슬픈이야기 #미겔본푸아 #복복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