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의 번역가님에 대한 명성을 익히 들어오던 터에 마침내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닿아 무척 기뻤다. 매끄러운 번역 뿐 아니라 원서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가 담보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안 번역한 책들이 무섭게 두껍거나 관심이 덜한 분야이거나 등등의 이유로 늦게서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인문학으로 분류되어 출판되었지만 이불 속에서 킥킥거리며 읽기에 소설보다 못할 것이 전혀 없는데 번역의 공이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5백 페이지가 넘는 책장이 무협지 넘기듯 넘어간다.책의 구성은 짤막한 에피소드들의 집합으로 크게 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도에 관한 이야기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한 것으로 봐도 좋겠지만 사실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도를 앞에 두고 수다스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왜 아니겠는가? 한 장의 지도엔 개인의 인생이 담겨있을 수도 있고 지도에서 인류의 역사를 엿볼 수도 있는데. 읽다보면 나도 하나쯤 지도에 관한 에피소드를 털어 놓고 싶어지기도 한다. 영국인이라면 이 책이 좀더 재밌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구글맵이 신기방기하거나 호그와트의 비밀지도가 무척 탐이 나거나 아니면 가까운 길을 멀리 인도해주는 네비에 당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씩 가지고 있을테니. 덧1:한국어판 제목이 '지도의 인문학'으로 정해진 건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다.덧2:책을 열면 처음에 지하철노선처럼 그려진 세계지도를 볼 수 있는데 역명(? 사실은 지명)에 오타가 있어서 웬일인가 싶었는데 책을 덮으며 보니 그 오타도 수정되고 역명도 추가된 아마도 버전 업 된 것 같은 노선도가 있어 더 의아했다. 무슨 의도가 있는 건지?덧3:오타가 나와서 굳이 지적하자면 책 곳곳에도 교정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261페이지 12번째 줄이나 371페이지 7번째 줄 같은.
세상과 삶에 대한 색다르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또한 읽다보면 의식했든 안했든 우리가 남몰래 품어왔던 사소한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도 얻게된다.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거시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갔지만 인간의 행복에 대한 통찰을 빼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럴듯한 추론과 설득되기 쉬운 상상력만을 펼쳐보였다면 베스트셀러 '한 권에 담은 인류 탐험기' 쯤으로 끝났겠지만 이 책은 쉽고 재밌는 읽을거리의 한계를 넘어 여러 가지 생각할거리를 준다.덧: 작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피엔스와는 달리 나라는 개인은 사피엔스의 예정된(?)소멸에 큰 슬픔을 느끼지 못하겠다. 다른 속 혹은 전혀 다른 종이 지구의 주인이 될 때가 오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다만 어느 멍청한 소행성이 약간의 궤도 이탈로 지구와 충돌하여 우주의 먼지로 소멸된다면 그건 왠지 조금 슬플 것 같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다들 해변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럭비공을 던지고 물수제비를 뜨고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을 했다. '안 어울리는 제목'을 대는 놀이였다. "미스터 지바고" "흉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흔드냐" "이반 데니소비치의 이틀" "보바리 처녀" "포사이트 괴담" "거대한 개츠비" "택시기사" "인플루엔자 시대의 사랑" "토비딕" "백치-22" "라즈베리 핀" 등등. p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