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들 -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
이은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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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변호사가 쓴 <상냥한 폭력들>은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하며 있었던 일들이 모두 녹아 있다.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무고죄로 고소된 사건, 거세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력이 되지 않은 사건, 기껏 용기냈더니 꽃뱀으로 몰린 사건 등, 수많은 피해가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있다.

p.44 피해 여성에게 위험한 건 변하지 않는 이 사회이고, 여전히 높기만 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문턱이며, 법을 악용해 피해자를 양껏 괴롭히는 가해자들이다. 그러므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와 사법 당국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p.153 '왜'라는 질문에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자신이 당한 일이 성폭력이 아니라는 선언을 마주하게 된다. 피해자들이 잘못해 이 모든 일이 생겼다는 '낙인'을 평생 떨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왜'를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받은 충격은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

p.159 담벼락을 낮춰 집을 지은 탓에 도둑이 든 것이니, 가해자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당연히 가해자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저항을 안 했으니 강간이 아니라는 말고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는 피해자의 시선에 대한 이해나, 충격을 받은 상태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여전히 부족하다. 이제부터라도 사회의, 법의 시선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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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들>엔 하나의 문장이 붙는다.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 제목을 감싸고 있는 이 문장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된다. 그런 과정에서 피해자는 다시 한 번 상처 입는다.

최근의 성범죄 사건들을 보며, 법의 강화뿐만 아니라 교육 강화의 필요성도 느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와 남의 경계를 두고 타인의 몸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걸, 신체적 접촉만이 아닌 언어로 행하는 것도 범죄가 된다는 걸 가르쳤으면 한다. 교육의 효과를 강화하는 데에 법과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성범죄에 대한 교육을 시켜도 막상 그것이 닥쳤을 때 피해자의 편이 되어줄 기관이나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니 말이다. 누군가가 성범죄 피해를 당했을 때 그를 도와줄 이가 있고 법이 있으며 기관이 있다는 것. 피해자가 당한 일이 성범죄가 맞다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말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피해자에게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이다.

인간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다. 각자의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선 자유가 필요하고 동시에 배려와 규칙도 필요하다.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에게 법은 꼭 필요하고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엔 법의 보호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그것이 벽이 될 때가 있다. 법이 벽이 되지 않도록, 상호간의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조금씩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아가 성범죄 피해자들이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혔을 때 그의 용기를 따스히 안아주는 사회가 되길 정말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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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지구 - 온난화 시대에 대응하는 획기적 비전
에릭 홀트하우스 지음, 신봉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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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매년 학교에선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2030년 지구의 모습을 그렸다. 몽상은 잘해도 상상력은 부족했던 내게 미래의 지구를 상상하기란 짝꿍의 그림을 슬쩍 보고 감을 잡아 흉내내는 것이었다. 늘 그렇듯 거창한 우주 도시를 그렸고, 다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래를 상상하는 데 있어 아이들은 '지금보다 발전한 지구'의 모습을 그렸다. 누구도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지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2021년 10월 31일, 제26차 유엔기후총회가 열렸다. 당사국들은 탄소배출 및 재해 보상 관련 문제로 열띤 토론을 펼치며 보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하겠다는 넷제로를 선언했고 중국과 미국은 오랜 토론 끝에 협력의 방향을 선택했다(21.11.11.). 전 세계의 목표는 지구 기온 상승 온도를 1.5도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IPCC는 보고서를 내놓고 160개가 넘는 당사국에 탄소 배출과 관련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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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홀트하우스의 <미래의 지구>는 '온난화 시대에 대응하는 획기적 비전'을 내놓는 책이다. 그는 인간이 배출한 탄소와 특히 선진국이 배출한 온실 가스, 그로인해 피해를 보는 피해국과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인간 시스템을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2050년까지의 미래를 구상하고 상상하며, 독자 역시 상상력을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준다.

p.61 기후변화를 재난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가장 큰 재난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같은 문명적 규모의 위협이 악화되는 것은 부당하고 불평등한 세상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곳 권력자들에게는 사려 깊은 생각 같은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과제는 기후변화 같은 구조적 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는, 새로운 권력 구조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p.65 우리는 소유의 개념을 버리고 상대방과의, 그리고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와의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한 증상일 뿐이다.

p.95 '기후변화 난민' 같은 건 없다. 유엔은 인간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할 만큼 대기나 환경이 위해를 끼치는 주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p.131 끝없은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모델은 지구가 급변하는 시대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가장 가난한 35억 명과 동등한 수준의 부를 소유하고 상위 10%가 전체 탄소 배출량 중 49%를 차지하는 세상에서, 기후변화는 개인의 선택으로 인해 악화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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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과 석유의 발견은 인류에게 무한한 발전을 주었지만 이는 곧 인류의 종말, 지구의 종말과도 맥을 함께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 벌어지는 일들의 책임은 선진국이 아닌 더욱 가난한 나라, 힘 없는 자들이 갖게 된다. 선진국에서 흘러나온 각종 폐수와 탄소, 온실가스는 저 멀리 떨어진 섬나라로 향해 그들을 더욱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힌다.

가끔 바쁜 하루를 보내다 세상의 속도와 내 속도가 맞지 않음을 느낀다. 하루를 조금 더 천천히 보내고픈 나와 달리 세상은 빨리빨리를 외치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지구, 생물종은 병든다. 인간은 스스로가 자초했다 할지라도 다른 생물종은 무슨 죄란 말인가. 또한 내가 배출한 탄소로 인해 저 멀리에 사는 사람들은 왜 고향을 잃고 집을 잃어야 하는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탄소 배출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내가 나인 것이, 한국 땅에 사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동시에 무얼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마지막에 '애도'와 '상상훈련'을 제안한다. 선진국으로 인해 자연재해를 입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 나아가 우리 모두 고향을 잃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기 위해. 그의 말대로 개인이 변하면 집단이 변하고 그러면 세상이 변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놓아야 할 것은 무수히 많겠지만 세상엔 빠르게 사는 것만큼이나 느리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시스템을 뒤엎는 일. 그것은 시작이자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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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 면 - 집에서 만드는 쉽고 간단한 면 요리
배현경 지음 / 샘터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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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 요리를 좋아하는 분, 간단하지만 정성 가득한 한 접시 요리를 찾는 분, 면을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해보고 싶은 분, 면 요리와 관련하여 추억이 있는 분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어릴 적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새벽에 먹었던 국수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른 새벽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한 뒤 엄마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소면을 삶았다. 귀가 밝은 나는 그 소리에 깨 엄마에게 갔고 그럼 엄마는 이미 끓고 있는 면에 반 움큼의 면을 더 넣었다. 자다 깬 채 먹는 국수는 새벽이라는 시간과 주방 한 곳에 앉아 먹는다는 구석짐이 있었다(어릴 때의 나는 주방의 한 구석을 좋아했다). 자는 언니가 깨지 않도록 수저를 조심스럽게 놓고 후루룩 소리 대신 숟가락에 받쳐 먹었던 면. 정리하는 엄마를 지켜보다 주방 불이 꺼지면 다시 잠들곤 했던 그때.

젊어서부터 입이 짧고 가리는 게 많았던 엄마는 따뜻한 육수를 부은 소면 앞에서는 무장해제 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새벽마다 그 이야길 해줬고 할머니가 낸 육수와 엄마가 낸 육수의 차이가 뭔지, 어떤 걸 넣어야 육수 맛이 더 깊어지는지를 내게 알려줬다. 그럼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국수를 후루룩 넘겼고 배는 금세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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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경의 <한 그릇 면>은 국수를 비롯한 각종 면 요리를 소개하는 책이다. 육수를 끓이는 법에서 각 면마다의 특징과 삶는 법, 간단하지만 군침 도는 맛을 보장하는 레시피까지. 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간단하지만 정성 가득한 요리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part 1. 국물과 함께 준비하는 따뜻한 국수

part 2. 달콤하고 매콤하게 비벼 먹는 국수

part 3. 색다른 맛을 즐기고 싶을 때 우동과 쌀국수

part 4. 시원하고 상큼한 냉국수와 볶음국수

part 5. 맛과 영양을 더한 인스턴트 라면

part 6. 특별한 날에는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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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엄마와 함께 먹었던 국수가, 매번 많은 양의 면을 끓여 조금씩 남았던 면이 생각났다. 요리책이긴 하나 요리책 이상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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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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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자신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 정치는 재미없고 따분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 정치에 다가가고 싶지만 이론이 어려워 망설이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하루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일주일 중 이틀은 학교에 가고 나머지 날엔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고, 주말을 제외한 저녁이면 알바를 한다. 늦은 밤, 몸을 씻고 독서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면 나의 하루는 끝이 난다.

반복되는 일상 속 조금씩 다른 사건들을 겪으며, 어떤 날엔 인생이 재밌다고, 살만하다고 느끼지만 어떤 날엔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책상에 앉아 내가 원하는 삶을 떠올린다. 안락하고 재미난 삶, 불안 없이 안정적인 하루,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몇 있는 삶. 하루를 잘 보내고 삶을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매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내 마음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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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의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는 인간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왜 정치적 동물인지, 정치적 동물이란 무엇인지, 정치는 어떤 때에 실현되는지, 삶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책이다. 저자를 따라 걷다보면 정치적 동물이란 무엇인지에 다다라 있다.

p.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사는 인생이나 마냥 권력을 쥐려는 정치가 아니라 반성된 삶과 숙고된 정치다. (중략)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문제이며, 정치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

p.20 인간이 집단생활을 통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보다 '잘' 살기 위해서이다. (중략) 정치 참여를 못 했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죽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다만 '잘' 사는 데 지장이 있다. 자신의 본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p.53-54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중략)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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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보면 "뜻을 함께 하자."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조정 대신들은 왕의 잘못한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상소를 올린다. 현대의 정치도 그렇다. 물론 현대엔 왕이 없고 대통령이라고 해서 엄청난 칭송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삶,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친다.

저자는 정치를 설명하기 전,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수명이 여타 동물에 비해 길고 두 손 역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라도 주변에 다른 인간이 없거나 그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도태 혹은 멸종하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협력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자연스레 공동체를 이루고 정치를 실현한다. 보다 더 나은 삶, 공동의 삶, 잘 빚어진 하루를 만들어 내기 위해.

흔히 정치는 남자들의 것, 재미 없고 따분한 것, 꼰대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정치 참여를 아예 하지 않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나의 하루가 잘 작동하고 타인의 하루 역시 잘 돌아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정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조금 따분하고 때론 목소리를 내야 하며 피곤한 일일지라도 말이다.

우리 모두에겐 '잘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선 주변을 살펴야 하고 내 의견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정치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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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코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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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케이프코드>는 '소로가 바다에 대해 쓴 유일한 책'이자 그곳에서 만난 자연과 바다,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여행기다(옮긴이 서문 인용). 책에 따르면 소로는 도시인보다는 좀더 원초적이고 꾸미지 않은, 유행이나 관습을 따르지 않는 담대한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 그에게 대서양, 즉 케이프코드는 그 자체로 그의 마음을 끌기에 적합한 곳이었다(그는 세 차례에 걸쳐 케이프코드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난파선을 목격하기도 하고 등대지기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때론 도둑으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그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p.102 그 광경은 지도에는 없는, 역마차를 타고 가면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진정한 풍경이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진짜 케이프코드! (중략) 사람들은 흔히 해변에 호텔이 있는 것은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난파선 생존자를 위한 임시대피소만 있는 경우에는 자부심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난파선 생존자를 돕는 해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p.107 바다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육지 사람들에게 우화 같은 신비한 이야기로 들린다.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에는 특별한 신비함이 있다.

p.110 매우 질긴 천조차 갈가리 찢겨나갈 정도로 거센 폭풍우가 해안에 몰아치는 사나운 날씨에도, 바다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해파리와 이끼처럼 연한 것들을 가슴에 품는가?

p.240 케이프코드의 대서양 쪽 해안에 표착한 배가 딱 한 척 있었는데, 그 배에 어린 소녀들이 타고 있다가 선실에 갇힌 채 익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망한 선원들의 집이 모두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있었다고 한다.

p.241 외지인과 주민은 서로 다른 눈으로 해변을 바라본다. 전자는 바다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광경을 보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자는 바다를 가까운 인척들이 조난한 현장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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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많은 것을 품는다. 그 말은 곧 바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나약하고 작은 존재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몰아치는 파도는 멋진 풍경이 되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이에게 파도는 밀어낼 수만 있다면 한없이 밀어내고픈 것이 된다. 소로는 여행하며 본 것들을 빠짐없이 적고 누군가의 죽음을, 좌초된 배를 외면하지 않는다.

'정신의 주권'을 중요시하는 그에게 케이프코드, 드넓은 대서양은 스스로를 낯선 곳으로 밀어넣는 행위이자 관념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매일 같이 비슷한 풍경 아래 비슷한 일을 하며,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태도와 정신은 소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었고 그는 현대인의 태도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선택한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로처럼 당장 대서양으로 향하는 일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주말에 다른 도시를 방문하거나 내가 사는 동네를 차 아닌 발로 걸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란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단해져 움직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까.

여행은 일상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 겪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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