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코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병순 옮김 / 싱긋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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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케이프코드>는 '소로가 바다에 대해 쓴 유일한 책'이자 그곳에서 만난 자연과 바다,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여행기다(옮긴이 서문 인용). 책에 따르면 소로는 도시인보다는 좀더 원초적이고 꾸미지 않은, 유행이나 관습을 따르지 않는 담대한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 그에게 대서양, 즉 케이프코드는 그 자체로 그의 마음을 끌기에 적합한 곳이었다(그는 세 차례에 걸쳐 케이프코드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난파선을 목격하기도 하고 등대지기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때론 도둑으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그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p.102 그 광경은 지도에는 없는, 역마차를 타고 가면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진정한 풍경이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진짜 케이프코드! (중략) 사람들은 흔히 해변에 호텔이 있는 것은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난파선 생존자를 위한 임시대피소만 있는 경우에는 자부심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난파선 생존자를 돕는 해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p.107 바다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육지 사람들에게 우화 같은 신비한 이야기로 들린다.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에는 특별한 신비함이 있다.

p.110 매우 질긴 천조차 갈가리 찢겨나갈 정도로 거센 폭풍우가 해안에 몰아치는 사나운 날씨에도, 바다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해파리와 이끼처럼 연한 것들을 가슴에 품는가?

p.240 케이프코드의 대서양 쪽 해안에 표착한 배가 딱 한 척 있었는데, 그 배에 어린 소녀들이 타고 있다가 선실에 갇힌 채 익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망한 선원들의 집이 모두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있었다고 한다.

p.241 외지인과 주민은 서로 다른 눈으로 해변을 바라본다. 전자는 바다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광경을 보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자는 바다를 가까운 인척들이 조난한 현장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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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많은 것을 품는다. 그 말은 곧 바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나약하고 작은 존재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몰아치는 파도는 멋진 풍경이 되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이에게 파도는 밀어낼 수만 있다면 한없이 밀어내고픈 것이 된다. 소로는 여행하며 본 것들을 빠짐없이 적고 누군가의 죽음을, 좌초된 배를 외면하지 않는다.

'정신의 주권'을 중요시하는 그에게 케이프코드, 드넓은 대서양은 스스로를 낯선 곳으로 밀어넣는 행위이자 관념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매일 같이 비슷한 풍경 아래 비슷한 일을 하며,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태도와 정신은 소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었고 그는 현대인의 태도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선택한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로처럼 당장 대서양으로 향하는 일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주말에 다른 도시를 방문하거나 내가 사는 동네를 차 아닌 발로 걸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란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단해져 움직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까.

여행은 일상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 겪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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