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 전종환 에세이
전종환 지음 / 난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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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되어보려는 사람(박준 시인의 추천사에서)'이 되려면 무엇이든 되어보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부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전종환이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대학생 시절 아나운서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아나운서가 된 사람, 어머니가 해준 화장을 받고 면접을 본 사람, 밑천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 다른 방송인들에게 쉽게 말 걸지 못 하는 사람. 비단 아나운서나 방송인이라 하면 자신감에 찬 모습을 떠올리지만 그의 모습에선 어쩐지 눈치 보고 주눅 든 사회초년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 시절 그가 사회초년생이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나, 사회초년생이라는 표면적인 것 그 아래, 거기에서부터 우러져나오는 무언가가 내게 위안을 줬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하나 쯤은 더 있다는 위안 같은 거랄까.

_2부에선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긴 후, 수습 시절을 거쳐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간 때가 적혀 있다. 사실 여러 뉴스를 보고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언론을 믿지 않은 적이 있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언론이 때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느끼면서 말이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고 또 보이는 게 사실도 아니다. 다수가 정상이 될 수 없듯 드러난 것 아래 발로 뛰는 기자들이 있다. 단독보도룰 향한 욕심이 묻은 기사도 있지만 진정으로 무언가를 밝혀내는 기사도 있다. 또 한 가지 느낀 건 30초 짜리 스트레이트 기사 속에도 30초 이상의 고민과 스트레스가 묻어 있다는 것. 어릴 적 취미로 소설을 쓸 때도 다음 문장, 다음 장면을 고민하다 놓아버리기 일쑤였는데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기사는 오죽할까 싶었다.

_3부에선 결이 달랐다.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많이 느껴졌다. '문득 전종환'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자신의 취향을 찾기까지의 과정. 아들 '범민'을 낳고 깨달은 것과 아내를 향한 로맨틱한 마음까지.

🌿✨🌿✨🌿

_중요한 건 정직, 또 정직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할 수 없음을 할 수 있음으로 포장하지 말고, 모름을 앎으로 치부하지도 말고. 또 모든 문장엔 쓰는 이유가 명확해야 하듯, 내가 하는 일에도 이유가 명확해야 하고 그 이유가 나 아닌 다른 존재에서 뻗어나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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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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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눈을 감고 사랑하는 것을 떠올려본다. 달콤한 초콜릿과 시럽이 들어가지 않은 아메리카노, 엄마의 손맛이 깃든 집 밥. 고양이와 강아지,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꼭 보고 싶은 코끼리와 기린 같은 동물들.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문장과 시집, 무수히 많은 책들. 사랑한다는 건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자 얼른 가서 그것들을 품에 안고 싶은 마음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안고 있어도 안고 싶은. 대개의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이자 생명이라면 무릇 가지는 ‘사랑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때론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지구엔 인간을 포함하여 많은 유의 종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다른 종과 달리 인간은 마치 지구가 자신들의 것인 양 사용하고 개발한다. 환경 및 기후 전문가들, 또 지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오래 전부터 지적해왔지만 그걸 듣는 인간은 몇 되지 않았다(나 역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일회용품을 소비했고 공통의 이익보단 당장 보이는 편의에 시선을 돌렸다). 최근 들어 스타벅스를 비롯한 카페에선 환경 문제를 운운하며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주고,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 혹은 개인 텀블러 사용을 권장한다. 하지만 다회용 컵 사용과 플라스틱 사용 규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무언가가 필요하고, 저자는 그것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말한다.

🌿✨🌿✨🌿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초보 비건이 쓴 에세이다(그럼에도 내게는 프로 비건으로 느껴졌다). 한의원에서 체질 검사를 한 저자는 자신에게 육류가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한의사의 진단을 토대로 아내와 함께 채식을 하고 고기를 멀리 한다. 하지만 스무 해 넘게 고기를 먹고 산 사람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는 몇 달 간 채식을 잘 유지하다 고기를 먹었고, 그러다 다시 채식을 지향해 비건이 되었다. 다시 채식을 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식품뿐만 아니라 화장품과 샴푸 같은 생활용품까지 비건 제품으로 바꾼다. 저자가 그렇게 된 데에는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아내 덕분이고, 아내에게 받은 사랑을 자신과 지구, 동물과 모든 생명에게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구를, 생명을, 귀여운 강아지를, 고양이를, 수많은 동물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당장 먹는 음식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그러한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자신 역시 한때는 ‘채식을 지향하는 스스로’에게 빠져있었을 때가 있었다고. 동물실험을 하는 담배를 끊는 게 어려웠다고. 그러니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실천하려는 마음과 행동이라고. 그럼에도 채식 앞에서 주저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인간에게 필요한(또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을 고민한다.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다. 생명체에겐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가솔린으로 에너지를 얻는 차에게 가솔린이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힘을 내게 해줄 에너지가 필요하다. 저자는 인간에게 맞는 에너지원을 탐구하다 인간의 근원을 고민한다. 인간의 시작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인간의 대한 탐구 끝에 저자는 이에 대한 답을 초식동물에게서 찾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탐구를 통해 인간에게 맞는 에너지원은 육류가 아닌 채식에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

알게 된 사실들
: '단백질 = 육류' 의 공식을 떠올리지만 현미와 같은 곡류에게서도 많은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영양 불균형은 비건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 육류을 지향하는 세상에서 비건은 취향 아닌 소수자가 된다는 것

🌿✨🌿✨🌿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초식동물을 닮았고, 그렇기에 우리의 근원은 흙에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인간과 함께 성장하며 육류의 맛을 깨닫게 된 우리이지만,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과 나를 감싸는 공기, 저 멀리 초원을 뛰어다니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채식을 우리 삶 가까이에 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건이 비건으로 인정받는 그 날까지, 이 땅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는 그 날까지,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지만 동시에 채식을 지향하는 그 날까지, 노력에 노력을 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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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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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 환경 운동의 시작은 채식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걸 알려주는 책입니다. 스스로를 초보 비건이라 부는 저자에게서 얻는 비건 해야 하는 이유와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결국 지구를 돕고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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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문학동네 청소년 53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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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전삼혜, 문학동네)

_무언가의 기준은 빠른 구분과 정리를 돕는다. 옷을 정리할 때나 꽃의 종류를 구분할 때처럼 말이다. 많은 표본의 예시가 되고 구분점이 되는 기준은 삶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기준이 무언가를 가르고, 나누고, 선을 그을 때 궤도의 안과 밖이 형성되기도 한다.

▶ 줄거리
_이 책의 주인공은 모두 십대 청소년이다. 달에 쓴 글씨를 지우기 위해 달로 향한 리아와 그의 룸메이트 세은, 아주 큰 키로 리아와 춤췄던 시간을 기억하는 제롬, 지뢰로 양 다리를 잃었지만 친구 슈로 인해 제네시스 학교에 오게 된 리우, 플랜을 통해 행성 좌표 데이터를 속이는 단과 한때 제네시스 학교의 학생이었던 누나 루카(캐롤린). 이들은 제네시스에 입학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통과한 자들로,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에 큰 역할을 한다.

_학교를 설립한 제네시스에겐 꿈이 있다. 그건 바로 지구와 소행성을 충돌을 막는 것. 그는 지구로 날아드는 소행성을 막기 위해 달의 땅을 사들여 그곳에 메시지를 남기는 ‘문라이터’ 사업을 펼친다. 그것으로 얻은 수익은 소행성을 공격하는 무기를 만드는 데에 쓰이고, 동시에 그는 재능 있는 연구자를 키우기 위해 세 가지 입학 조건을 내건다. 열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후견인이 없는, 제네시스의 원격 테스트를 통과할 만큼 똑똑한(p.42) 아이들만을 입학시키겠다고 말이다.

_제네시스는 ‘신’을 만들어 우주 지도를 조작한다. ‘신’이 만들어짐으로써 궤도는 수정되고, 행성의 개수 역시 하나 더 늘어난다. 수정된 지도와 궤도에서 제네시스는 신을 믿지만, 신은 모든 것을 지켜주지 않는다. 소행성은 점점 지구로 향하고 아이들은 다짐한다. 지구로 향하는 소행성이 제네시스 학교와 자신들이 있는 섬으로 떨어지게끔 말이다.

▶생각
_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누군가의 기준에 의해 궤도 밖에 놓여 있다. 그들은 궤도 밖에 놓여 있다는 이유로 제네시스 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얻지만, 자격을 얻었다는 이유로 평생 나가지 못할 섬에서 소행성과의 충돌을 막는 데 힘을 다 한다.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은 죽음을 넘어 지구의 멸망, 종말을 뜻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암흑만이 남은 지구. 이러한 종말론적 상황은 궤도의 안과 밖을 없애고, 기준을 세워 나눈 선을 지우며 모든 것들의 경계를 없앤다. 경계가 없어진 상황에서 아이들은, 섬 밖과 지구 밖의 소중한 이를 위해 자신들의 내일을 아끼지 않는다.

_소중한 것은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나의 사랑으로 둘러쳐진 소중한 것은 다시금 나의 힘에 의해 보호된다. 그렇기에 소중한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한다. 기준에 의해 자격을 얻고 그 자격으로 인해 외롭게 지내야만 했던 아이들. 그 속엔 그들의 우정과 연대와 사랑이 있고 간절함이 있으며, 궤도 밖에 있으면서도 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쏟아 붓는 열정과 노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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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 까탈스런 소설가의 탈코르셋 실천기 삐(BB) 시리즈
최정화 지음 / 니들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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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나는 나를 얼마만큼 알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원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라는 개체는 하나이면서도 하나 이상이다. 어제 좋았던 것이 오늘 싫을 수 있고 어제까지 싫었던 것이 오늘은 괜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 대해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을 수정해야 할 때가 있다. 나를 아는 과정은 계속 된다. 삶이 지속되는 한, 나는 나를 알아가야 한다.

_‘탈코르셋’은 내 몸에 코르셋처럼 달라붙어 있는 불편한 것을 벗어던지는 행위이다. 흔히 ‘탈코’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곧 나를 위한 일이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불편함을 벗어던지는 일. 이것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_저자 역시 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고 삼각팬티 대신 트렁크를 입는다. 자신의 몸에 난 털과 콧수염을 인정하게 되고 굳이 화장하지 않는 날을 이어간다. 책을 읽다보면 삶에서 덜어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목적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된다. _p.33 콧구멍을 막지 않고 원래 생긴 대로 뚫려 있게 두면 더 많은 산소를 들이마실 수 있고 답답하지 않은 것처럼, 브래지어를 벗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산소를 마실 수 있다. 숨이 잘 쉬어진다. 가슴이 편안하다. 그래서 하지 않는다.

_p.60 여성이 트렁크 팬티를 입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가 트렁크 팬티를 입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은 겉옷의 변화다. 겉옷에 맞춰 속옷을 입지 않고 속옷에 맞춰 겉옷을 입는다.

_p.72 지금은 콧수염이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다. 가끔은 콧수염을 밀기도 한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싶을 때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처럼, 산뜻한 기분을 내기 위해서 코밑을 정리할 때가 있을 뿐, 콧수염의 존재에 대해 진지해지거나 심각해지는 일은 거의 없다.

_우리 사회는 어려서부터 성별에 따라 역할을 부여한다. 하지만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애도 있고 파란색을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아이에게 인형을 쥐어주거나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태권도를 시키는 일. 그것이 곧 차이를 만들고 젠더 역할을 고정한다. 치마 입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바지 입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몸에 딱 붙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헐렁한 옷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화려한 무늬 없는 무지 옷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각각의 개성을 인정하는 시대인 만큼 개인이 선호하는 걸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_다양한 팬티와 다양한 털과 다양한 얼굴이 함께 하는 사회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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