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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식동물과 닮아서 - 초보 비건의 식탁 위 생태계 일지 ㅣ 삐(BB) 시리즈
키미앤일이 지음 / 니들북 / 2021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눈을 감고 사랑하는 것을 떠올려본다. 달콤한 초콜릿과 시럽이 들어가지 않은 아메리카노, 엄마의 손맛이 깃든 집 밥. 고양이와 강아지,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꼭 보고 싶은 코끼리와 기린 같은 동물들.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문장과 시집, 무수히 많은 책들. 사랑한다는 건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자 얼른 가서 그것들을 품에 안고 싶은 마음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안고 있어도 안고 싶은. 대개의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이자 생명이라면 무릇 가지는 ‘사랑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때론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지구엔 인간을 포함하여 많은 유의 종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다른 종과 달리 인간은 마치 지구가 자신들의 것인 양 사용하고 개발한다. 환경 및 기후 전문가들, 또 지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오래 전부터 지적해왔지만 그걸 듣는 인간은 몇 되지 않았다(나 역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일회용품을 소비했고 공통의 이익보단 당장 보이는 편의에 시선을 돌렸다). 최근 들어 스타벅스를 비롯한 카페에선 환경 문제를 운운하며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주고,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 혹은 개인 텀블러 사용을 권장한다. 하지만 다회용 컵 사용과 플라스틱 사용 규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무언가가 필요하고, 저자는 그것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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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초보 비건이 쓴 에세이다(그럼에도 내게는 프로 비건으로 느껴졌다). 한의원에서 체질 검사를 한 저자는 자신에게 육류가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한의사의 진단을 토대로 아내와 함께 채식을 하고 고기를 멀리 한다. 하지만 스무 해 넘게 고기를 먹고 산 사람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는 몇 달 간 채식을 잘 유지하다 고기를 먹었고, 그러다 다시 채식을 지향해 비건이 되었다. 다시 채식을 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식품뿐만 아니라 화장품과 샴푸 같은 생활용품까지 비건 제품으로 바꾼다. 저자가 그렇게 된 데에는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아내 덕분이고, 아내에게 받은 사랑을 자신과 지구, 동물과 모든 생명에게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구를, 생명을, 귀여운 강아지를, 고양이를, 수많은 동물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당장 먹는 음식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그러한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자신 역시 한때는 ‘채식을 지향하는 스스로’에게 빠져있었을 때가 있었다고. 동물실험을 하는 담배를 끊는 게 어려웠다고. 그러니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실천하려는 마음과 행동이라고. 그럼에도 채식 앞에서 주저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인간에게 필요한(또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을 고민한다.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다. 생명체에겐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가솔린으로 에너지를 얻는 차에게 가솔린이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힘을 내게 해줄 에너지가 필요하다. 저자는 인간에게 맞는 에너지원을 탐구하다 인간의 근원을 고민한다. 인간의 시작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인간의 대한 탐구 끝에 저자는 이에 대한 답을 초식동물에게서 찾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탐구를 통해 인간에게 맞는 에너지원은 육류가 아닌 채식에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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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사실들
: '단백질 = 육류' 의 공식을 떠올리지만 현미와 같은 곡류에게서도 많은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영양 불균형은 비건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 육류을 지향하는 세상에서 비건은 취향 아닌 소수자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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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초식동물을 닮았고, 그렇기에 우리의 근원은 흙에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인간과 함께 성장하며 육류의 맛을 깨닫게 된 우리이지만,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과 나를 감싸는 공기, 저 멀리 초원을 뛰어다니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채식을 우리 삶 가까이에 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건이 비건으로 인정받는 그 날까지, 이 땅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는 그 날까지,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지만 동시에 채식을 지향하는 그 날까지, 노력에 노력을 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