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좋아한 적 없어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체스터 브라운 지음, 김영준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착각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게 자신을 언제부터 사랑했느냐고 묻는다. 다아시는 이에 답하기를,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찾아오기도 하고 혹은 서서히 찾아와있는데 불쑥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아, 이게 사랑이었구나, 하고. 그러나 간혹 어떤 사랑은, 착각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체스터의 사랑도 착각에서 온 것이리라. 글래머인 스카이와 들판에 엎어지고 나서, 그 후에 체스터는 매일 그녀를 꿈꾼다. 그녀의 벗은 모습을 혹은 그녀와 입맞추는 장면을. 체스터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부인하고 싶어질때도 있다.


캐리는 체스터를 아주 많이 좋아했다. 그런데 체스터는 캐리의 친구인 스카이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캐리는 아무렇지도 않은척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럴때 누구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다. 캐리는 이제 체스터에게 말한다. 난 너 좋아한 적 없어!!



(손가락은 왜 튀어나왔니...)



사랑을 느끼는 아주 많은 순간들이 있다.


캐리는 체스터를 좋아하고 체스터는 스카이에게 사랑 고백을 했지만, 코니는 체스터의 좋은 친구다. 체스터는 코니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는 시간이 무척 좋다. 둘이 들판에 나란히 누워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우리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 상대와 통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온전히 상대를 이해하고 나 역시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특별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바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닐까.





사랑하는 순간에는 상대의 모든것이 아름답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자신은 보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별 것 아닌 것들이 나에게는 새롭고 찬란하고 대단하다. 언니, 체스터도 알통이 있어, 체스터, 언니에게 보여줘봐. 언니는 그 작고 작은 알통 비스므레한 것을 보며(아, 메추리알 같은 알통!), 마지못해 외치는 말, 와-. 

언니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아? 오,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저 작은 알통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거니.





시간은 흐르고 체스터는 이제 자신이 스카이를 그렇게까지 많이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자신이 할 수 있는건 무엇이고 할 수 없는건 무엇인지. 심부름도 한 번 해본적 없고 사랑한다고 다정하게 말해주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죽고, 체스터는 그렇게 커가고있다. 





『내 사랑 삼순이』였나, 오래전의 그 드라마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가족 관계를 묻는다. 여자의 신상에 대한 걸 물을때 여자는 남자에게 말한다. 그런걸 왜 묻냐고, 그런걸 묻는건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거라고. 관심이 없다면 착각하게 하지 말라고.

이제 막 호감이 생긴 사람에게,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이 싹 튼 상대에게, 그래서 욕심이 나는 상대에게 나는 무얼 물어보고 싶을까. 그리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나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십 년쯤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있고 싶은지 어디에 있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다. 칠 년뒤에도 나랑 알고 지내고 싶은지를 묻고 싶기도 하다. 어느때 행복한지 가장 간절히 바라는건 무엇인지도 물어보고 싶다.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그걸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그리고, 나한테 했던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다. 우리 둘이 나눈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걸, 내게는 그렇다는 걸 말해주고도 싶다. 다른 여자들한테 잘해주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그렇지만 결코 어떤 것들에 있어서만큼은 절대 다른 여자에게도 해서는 안된다고도 말하고 싶다. 나에게만 하는 얘기, 나에게만 하는 행동들 몇가지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는 착각을 하고, 사랑한 적 없다고 거짓말도 해보고, 이별을 경험하고, 나만 좋아할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 걸 보기도 하면서 체스터는 이제 어른이 될 것이다. 


어른이 되는데 있어서 시행착오는 필수다. 사랑이라고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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