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리뉴얼판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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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책장에 꽂혀 있었어도 선뜻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작법서 치고 오래되기도 했으니. 음...뭐랄까? 신선하고 신박한 것들이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니 낡고 오래된 세계에 발을 디디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을까?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재활용품 종이 박스에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줄 수는 없었다. 최근 정유정 소설들을 읽다가 문득 그 어떤 끌림으로 나도 모르게 꺼내어 읽게 되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나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 기분이 어떠하냐?' 라고 책에 묻고 싶었다.

세상에나!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그의 삶을 작법서에다 버무려 넣다니!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이고 구차할지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지리멸렬했던 과거에 위안을 아니 받을 수가 없더라. 하여 지금 내게 드리워진 짙은 어둠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빛나는 순간은 반드시 어둠의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물론 그의 옆에는 조력자이자 직언을 해주는 든든한 소설가 아내가 있었다는 것이 조금 부럽기도 했지만,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도 고전이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처럼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작가들에게 그가 몹시 고심하며 썼다는 이 책이 나침판이 되어 줄 수는 있겠다.

며칠 전 행거에 걸려있던 아드님 점퍼를 꺼내려다 의자에서 미끄러져 오른쪽 다리에 찰과상을 입었는데 서글프게도 나이가 들어 그런지 이젠 후시딘으로는 낫질 않더라. 급기야 오늘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산책을 할 수 없었다. ㅠㅠ 

이쁜 따님이 낮에 왔다 저녁을 함께 먹고 돌아간 후, 그의 책 안에 말려 두었던 나뭇잎을 바라보며 아쉬운 대로 이렇게라도 가을을 느끼는 밤이다.

#유혹하는글쓰기 #스티븐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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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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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독자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올시다' 라며 고해성사를 하는 듯한 서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침울하게 이어지는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이다. 요조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른 채,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비관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사람들, 특히 자신을 돌봐 줄 수 있는 여자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간다. 마약과 술은 덤이었을까? 그가 가진 우월한 배경이나 타고난 예술적 소질 등은 부차적일 뿐, 끝내 그의 삶을 빛나게 해 주지 못한다.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치는 동안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과 치열하게 마주해서였을까? 세상 사람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의해 어이없이 파멸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요조에게 '왜 그렇게밖에 못 사냐고!' 소리치며 돌을 던질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p.138

역설적으로 어쩌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은 각박한 인간 세상에서 실격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일까? 아니, 아닐 것이다. <인간 실격>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하나만은 절대로 잃지 말자는 작가의 굳센 다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실격 #다자이오사무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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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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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거실 형광등 하나가 빛을 잃었다. 처음엔 답답하더니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고 있다. 근 한 달을 고생한 끝에 병원을 바꾸어 치료하기로 결정하고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린다. 몸과 마음이 앓는 소리에 지쳐 좀비처럼 널브러져 있는데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나를 바깥, 바깥으로 이끌었다.

아픈 몸을 핑계로 며칠째 읽다 말다 지지부진했던 은희경의 신작 '빛의 과거' 들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집 앞 공원에 서 잠시 가을빛에 스치는 바람과 마주한다. 그녀의 '빛의 과거'는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다. 여자 기숙사 생활을 해 본 적도 없고 대학을 매우 늦게 들어간 탓에 데모 한 번, 미팅 한 번 못 해 본 나로서는 낯설기만 한 빛의 세계이다. 

하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지점만으로도 누구라도 뚜벅뚜벅 들어갈 수 있는 그녀의 세계임에 틀림이 없다. 아주 오래된 <새의 선물>만큼이나 진한 감동이나 몰입도가 높진 못했지만, <소년을 위로해 줘>만큼 실망감이 크진 않았다. 소설이든 사람이든 기대치를 높이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까?

#빛의과거 #은희경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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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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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분실>과 <원통 안의 소녀>로 김초엽과 짧게 만나고 '기대'라는 감성의 물성을 가지고 그녀의 첫 소설집을 기다렸다. 허나 한동안 천착했던 '정유정'만큼 쉼 없이 순식간에 읽어 내리지는 못했다. 그저 나의 아픈 몸과 일상이 순탄치 못했던 것이라는 변명 따위를 늘어 놓으며 잠시 접어 놓은 페이지를 열어 잠이 덜 깬 아이처럼 더듬더듬 느리게 그녀를 탐독했다.

93년 생. 아직은 덜 익은 이력보다 그녀가 펼친 일곱 가지 저 마다 다른 이야기는 놀라울만큼 섬세했고 질투가 날 정도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렇게 아찔하지만 여전히 내겐 모호하고 아득한 미래 세계에 대한 그녀의 상상력의 끝엔 인간과 지구 그리고 광활한 우주가 점층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듯 했다. 아! 이토록 아름답고도 매혹적인 SF소설이라니!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었던, 그러나 우주로 나아가지 않고 깊은 바다로 뛰어든 재경. 내 이름과 같은 그녀가 지금의 혼돈스런 내 마음의 심해에서 유영하고 있다. 왠지 미안한 마음에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는 그 길을 나의 속도로 걷고 또 걸어야겠다.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없다면 #김초엽 #SF소설 #동아시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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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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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아이들은 물론 이 땅의 모든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을 바라보면 늘 아릿한 통증이 지나가곤 한다. 누구든 잘난 부모 부자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싶지 않겠냐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 보니 부모가 가난하거나 한 부모이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고,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조국이고 장제원이 아버지인 것일 뿐. 

장제원이 조국에게 고함치며 말했듯이 아이가 잘못한 것은 무조건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기에. 하여 조국의 딸은 자신의 아비처럼 자신에게 과오가 없는지 돌아보며 소나무처럼 우뚝 서서 시린 찬바람을 묵묵히 맞으며 지금의 시련을 견디어 낼 것이지만, 장제원의 아들은 아마 모래로 성을 쌓은 것처럼 작은 바람에도 금세 무너져 내릴 것이다. 운 좋게 둘 다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두 사람의 아버지 인성은 극과 극이기 때문이란 건 누구나 알 터. 

조국의 딸과 가족을 물고 늘어지는 괴상망측한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막장 드라마처럼 무식한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몹시 두려웠고 깊이 절망했다. 그러나 청문회가 끝나고 신의 한 수인 듯한 장제원 아들의 음주 운전 기사를 보며 얼마 전 읽었던 <페인트>가 생각났다. 제12회 창비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인 <페인트>는 부모가 없는 영유아와 청소년들을 정부에서 '국가의 아이들'로 직접 보호 관리한다는 발상으로 시작해 청소년이 되면 스스로 부모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는가?' 주인공 제누 301은 페인트를 통해 어른들이 보기에 잘나 보이는 부모를 선택하지 않고 어른으로서는 좀 모자라지만 진솔하고 진실되 보이는 젊은 부부를 선택하고 소통을 시작하는데...멀지 않은 미래에 충분히 있을 법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어우러져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작가는 우리 모두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던진다.

제누는 나의 안일한 예측에서 벗어나 결국엔 맘에 꼭 들었던 부부를 선택하지 않고 홀로 서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 결론은 작가의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현실세계에서는 금수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게 되겠지만, 작가는 그들의 행복 여부는 반드시 주어진 환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제누를 통해 애써 보여준다. 제누처럼 결핍이 있는 아이들도 부모와 상관없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르고 멋지게 자라는 아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아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러하리라고 애써 믿고 싶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애초에 다른 운동장이 아닌 저마다 나름의 개별적 운동장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이들이 더 존중받는 그런 세상을 감히 꿈꾸어 본다.

#페인트 #이희영작가 #제12회창비청소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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