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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엊그제 거실 형광등 하나가 빛을 잃었다. 처음엔 답답하더니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고 있다. 근 한 달을 고생한 끝에 병원을 바꾸어 치료하기로 결정하고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린다. 몸과 마음이 앓는 소리에 지쳐 좀비처럼 널브러져 있는데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나를 바깥, 바깥으로 이끌었다.
아픈 몸을 핑계로 며칠째 읽다 말다 지지부진했던 은희경의 신작 '빛의 과거' 들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집 앞 공원에 서 잠시 가을빛에 스치는 바람과 마주한다. 그녀의 '빛의 과거'는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다. 여자 기숙사 생활을 해 본 적도 없고 대학을 매우 늦게 들어간 탓에 데모 한 번, 미팅 한 번 못 해 본 나로서는 낯설기만 한 빛의 세계이다.
하지만, 시대와 상관없이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지점만으로도 누구라도 뚜벅뚜벅 들어갈 수 있는 그녀의 세계임에 틀림이 없다. 아주 오래된 <새의 선물>만큼이나 진한 감동이나 몰입도가 높진 못했지만, <소년을 위로해 줘>만큼 실망감이 크진 않았다. 소설이든 사람이든 기대치를 높이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까?
#빛의과거 #은희경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