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빙 고프먼이 모든 사회학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알려진 질문으로 바꿔보자: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25p
검열관들에게 위험 요소란 어떠한 생각이 아니라 사람-무례하거나 부주의한 언급 때문에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유력 인사-이었다. 62p
국가에서는 빠리 대학, 고등법원, 성직자 총회, 프랑스 주교, 바티칸 등의 유력 기관들의 자체 검열을 시행할 권리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쇄물에 대한 독점적인 통제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65p
롱은 역사책에 대한 관심도 높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가 보기엔 힌두교도 독자들이 만물이 변화하는 큰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작고 세속적인 일들은 하찮게 여기는 게 그 원인이었다. 117p
명예훼손 기소는 영국에서 1695년에 사전 검열이 사라진 뒤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주요한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출판은 점점 담대해져갔다. ...기소를 하려면 개인의 명예가 손상되었다는 걸 증명해야만 했다. 단지 특정 집단을 애매해게 모욕하는 일반적인 정치 논평이나 발언을 바탕으로 기소하는 건 불가능했다. 123p
1858년 동인도 회사가 폐지된 이후, 영국인들은 정보를 수집해 끝도 없이 긴 문서 작업을 하는 근대적인 방식의 행정으로 인도를 통치했다. 132p
이렇게 앞뒤 맥락 없이 단순하게 줄거리를 정리한 건 현지인들이 아이들처럼 동화나 즐긴다는 걸 암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던 듯하다. 145p
결국 감시는 처벌로 전환되었다. 처벌은 두 가지 형태를 띠었다. 바로 경찰에 의한 탄압과 법률적인 기소였다. 161p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누구든 표현의 자유를 인도에 대한 통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서구의 사치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162p
동독은 틈새 사회, 즉 사람들이 개인적 삶에 집중하고 사적인 활동을 누릴 수 있는 틈새가 존재하는 사회였다. 199p
'귓속에 사는 작은 녹색 인간' 244p
'잘못 던져진 질문' 306p
어떠한 체제도 순전히 강제에 의해서만 작동할 수는 없다. 313p
한 문화체계에서 모순되는 요소들이 양립한 것 자체가 현지인들에 대한 지배력이 생사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313p
표현의 자유는 가혹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려는 욕구와 그 가혹함에 맞서 저항하려는 욕구처럼 서로 상반되는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316p
솔제니친은 자신이 어떤 글도 출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립된 상태지만 완전한 자유 속에서 글을 쓴다. 317p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자유로운 의견의 교환을 통해서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319p
마네아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자유 - 각종 제약은 없지만 시장의 냉혹한 원칙에 따라 스스로 타협할 것을 요구하는 복잡한 체계 - 를 찾게 되었다. 3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