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의 일기장
전아리 지음 / 현문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성장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의 장르는 성장소설이야.'라며 읽었던 모 책이 영~ 맘에 들지 않았기에 그 때부터 성장소설을 싫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잔잔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그 소설은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끝까지 읽지도 못했던 것 같다. 성장소설이라 함은 주인공이 청소년 쯤이고 그가 이런 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서서히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일텐데 일단 다 커버린 나는 어린 아이들의 성장기가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그런 것들을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전아리'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는 몇 살 더 어린데 온갖 문학상이란 문학상을 다 받았댄다. 질투와 시기가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어린 마음에 '칫, 안 읽어!'라고 하다가, 그래도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얼마나 잘 썼으면 상을 모조리 독차지했을까? 그래서 골라든 것이 <직녀의 일기장>인데, 성장소설이란다. 하긴, 그녀가 받았다는 대부분의 상들은 다 청소년문학상이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 다 그 또래 이야기겠지, 뭐. 읽어? 말어? 고민하다가 일단 열페이지만 읽어보자 생각하며 첫장을 펼쳤다. 흠,, 술술 읽힌다. 꽤 재미있기도 하다. 

고등학생인 직녀는 아마도 문제아인 것 같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학교의 주임선생이 - 나 학교 다닐 때는 '학생주임 선생님'을 줄여서 '학주[학쭈]'라고 불렀었는데.. 뭔가 어색하다 했더니 호칭의 차이였군. - 직녀부터 호출하는 걸 보면. 집에서도 아들만 챙기고 온갖 구박을 다 받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좀 더 어릴 때 똘마니로 키우던(ㅋ) 연주라는 친구와 새침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민정이라는 친구가 있다. 다른 학교와 싸움이 붙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라며 문자로 물어오는 후배들도 있다. 그렇게 직녀의 일상에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여기 밑에 지방에서는 저런 문제 여학생들을 '깡X'이라고 한다. 흠, 지금도 그런 말을 쓰려나?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이제 십년이 다 되어가다보니, 요새 세상처럼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하는 때에 십년전 이야기를 하려니 왠지 불안하다. 어쨌든,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런 부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부류도 아니었다. 유독 '깡X'들은 키가 큰 조숙한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키가 작아 키 큰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끼리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다. 그래서 그네들의 생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여기 <직녀의 일기장>에 나오는 직녀는 그래도 진짜 진짜 못된!!!! 그런 아이는 아닌 것 같다. 뉴스에 나오는 정도의 사건은, 작가가 일부러 묘사를 안 한건지 아니면 그 정도 사건은 피해가는 머리좋은 '깡X'인건지.. 그래서 그런지 직녀는 애정이 가는 캐릭터이다. 아들만 유달리 챙기고 감싸며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지도 않은데;;;) 자기는 대놓고 무시하는 엄마를 미워하고 싫어하지는 않는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연주에게 화가 났으면서도 계속해서 연주의 눈치를 보고 신경쓰는 귀여운 구석도 있다. 또 봉사활동 하러 갔다가 알게 된 골칫덩어리 짝동생 (나 학교 다닐 때는 '양동생'이라는 말을 썼을텐데.. 이 에피소드는 건전한 봉사활동 이야기라서 '짝동생'이라고 하는 가보다.)에게 은근히 관심을 가져주기도 한다. 마지막에 간호대에 가서 간호사가 되겠다는 직녀의 원래 의도는 약간 불순했지만, 그래도 상상을 해보면 완전 친절한 전형적인 간호사는 못 되더라도 무심하면서도 은근히 환자들을 잘 챙기는 간호사가 될 것 같기는 하다. 

재밌고 유쾌하게 읽기는 했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날파리나 어릴 적 정경자 같은 약한 자와 같은 입장에 있는, 혹은 있었던 사람들도 이 책을 유쾌하게 읽을까? 왜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 같은 데에서 주목받는 것은 일등 아니면 문제아일까? 아주아주 평범한, 평범한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그냥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여자,정혜>같은 영화 속 주인공은 또 없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의 최근작인 <팬이야>는 스물아홉의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한다. 아직 스물아홉이 되지 않은 작가가 스물아홉의 일상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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