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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평점 :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은은한 책 표지 그림도 마음에 들었다.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라는 제목 밑 짧은 문구도 맘에 들었다. 띠지에 적힌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라는 문구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이렇게 내 맘에 쏙 드는 채로 내 손에 들어왔다. 과연, 책 속 내용도 마음에 들까? 너무 기대를 하다가 실망하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이 들 만큼, 첫인상이 이쁜 아이였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서 왠지 더 마음이 간다. 특별히 어떻다 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있다. 동물 중에 우리가 귀여워하고 좋아하는 친숙한 동물들도 있지만, 사람을 해치거나 난폭하거나 아주 지저분하거나 하는 동물도 많이 있으니까 모두 통틀어서 동물이 좋다 라고는 말이 안 나오지만, 식물은 대부분 순하고 깨끗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하던 나는 식물학자의 삶이나 가치관을 한번 훔쳐보고 싶었다.
아마도 프랑스 파리의 어느 식물원. 한 소녀가 매일 식물원에 들어와서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돌아다니고 있다. 이 식물원에서 일하는 식물학자인 나는 그 아이를 유심히 지켜본다. 그러던 어느 날 해바라기를 뽑은 그 아이(사에라)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주고는 한 번 키워보라고 한다. 어딘가 삐딱하고 약간은 음침하게 보이기도 하던 사에라는 해바라기 씨앗을 화분에 심고는 학수고대하여 기다리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게 된다. (이 장면의 그림이 얼마나 귀엽고 리얼하던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식물원의 가족이 되어버린 사에라, 그리고 식물학자인 나, 식물원 사람들...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지나고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 사에라. 아쉽게도 헤어지게 된다.
특별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사에라와 식물원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수채화 같은 잔잔한 그림들 속에 은은하게 그려낼 뿐이다. 무한히 따스해보이는 나무도 있고, 한없이 쓸쓸한 낙엽이 보이기도 한다. 아주 특별한 그림책이었다. 이세 히데코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어른이 되어 그림책을 찾게 되다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보고 싶다면 이세 히데코의 책을 추천한다. 다만, 그림책이다 보니 읽는 시간은 무한정 짧을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한 장 한 장 다시 들쳐보며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