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230 Days of Diary in America
김동영 지음 / 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마치 내가 그 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자유로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래서 여행 에세이를 찾아서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며 내가 직접 내딛지 못하는 그 곳을 가슴 한 가득 느꼈다. 헌데 조금씩 그런 감정들보다는 질투가 생겨났다. 다른 사람들은 용기 백배하여 직접 떠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어 나가는데, 나는 내가 있는 곳을 한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매일 보던 사람들을 보며,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결국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후회로 책을 던져 버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행 에세이를 보면 손이 가는 심정은 또 뭘까?
이번에 만난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역시 흔한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풍경 사진과 사람들 사진, 허름한 골목 사진들이 가득 있는 책을 스르륵 넘겨 보니, 역시 내가 알고 있던 그렇고 그런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내가 뭐하러 또 여행 에세이를 샀지? 결국엔 실망할 거면서...'라며 별 기대하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 김동영이 나이 서른즈음에 갑자기 일하고 있던 방송국에서 해고를 당하고는 미국으로 떠나서 차 한대 사서 미국횡단을 하며 쓴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아무래도 해고 당하고 멍하니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이국땅의 풍경을 맘껏 구경하고 즐기고 하는 마음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저자의 방황하는 마음, 허무한 마음 같은 것들이 글 속에 녹아있다. 또 이 책에는 특히나 '너'에게 하는 글들이 많다. '너'는 잠시 머물게 된 집에서 만난 친구일 때도 있고, 아마도 그의 그녀'였던' 사람일 때도 있고 그랬다. 다 똑같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 때 그 때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넓디 넓은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그 길이 따뜻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 사람, 울면서 운전한 일도 많다.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럽거나 불안하지 않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걸 모른 채 여기저기 헤매고 있다." (94쪽) 또 길을 잃고 울고 있다가 경찰관을 만나서 숙소로 다시 돌아간 일도 있다. 서른 즈음의 다 큰 남자가 챙피하지 않을까? 그는 이 일에서 삶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만난다. "지긋지긋한 관계들 속에서 어디론가 조용히 숨고 싶을 때, 난 이 일을 되새기게 될 것 같아. 결국은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지도를 들고 결국 그 길을 돌아올 테고, 다시 그 사람들 속에서 그 관계를 고마워하면서 살아갈 테니까. 그렇게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125쪽)

여행길에서 그는 자신의 사랑들도 추억한다.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는 편이 낫다고 얘기하고, 나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취향을 짓밟힐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에게 맞춰주기 위해 나의 많은 것들을 죽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착한 '척'하면서 결국 내 욕심을 다 차리는 이기적인 모습만 가득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수양한다고 해도 내 취향을 짓밟히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나도 먼 곳으로 여행가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 타인의 취향에 맞출 수 있을까. 그렇게 못한다고 해도, 내가 너를 좋아했던 사실은 거짓이 아닌데.. 너는 알까. 저자가 너에게 얘기하듯. "내가 너에게 준 나무목걸이에서 싹이 나면 알게 되겠지. 내가 너를 많이 좋아했다는 걸." (177쪽)

여행 에세이를 읽든, 소설을 읽든 거기에서 얻는 것은 책을 읽고 있는 내 몫이다. 내가 어떻게 글을 읽느냐에 따라 저자가 의도했든지, 안 했든지 나는 뭔가를 얻게 된다. 이 책을 펴고 읽으면서 내가 한동안 뒷장으로 넘기지 못하고 펼쳐놓고 있던 페이지는 168쪽이다. 멤피스의 울프리버의 사진이 두 페이지에 넓게 걸쳐있는데 처음 봤을 때는 바다인 줄 알았다. 넘실대는 물들이 꼭 1월 1일에 새해가 뜨는 걸 보러 포항 호미곶에 갔을 때 봤던 그 바닷물들 같았다. 저자에게는 울프 리버이지만 나에게는 포항 앞바다. 같이 보았던 사람들, 그 때의 감정들. 사진 한 장만으로 많은 걸 상기시켜주었다. 내 개인적인 추억 혹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 사진 한 장으로 그 이후의 그의 글들이 더 짠해졌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책으로 남을 수는 없다. 나에게 이 책은 조금 특별해질 것 같다. 그 사진 한 장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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