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여행 1 : 그리움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순간이 종종 있다. 그러면서도 지겹지만 놀랄 일 없는 평범한 일상에 발이 묶여 함부로 벌떡 일어나 떠나지 못하는 소심한 마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외국에서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 하고 찍은 사진과, 감수성이 뚝뚝 떨어지는 글들을 보며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도 하고, 상상도 해보고 그러며 하루를 보낸다. 바다 건너 외국으로 떠나기에는 이것저것 나를 잡는 '이유' 혹은 '핑계' 혹은 '변명'들이 너무나 많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 아름다운 곳들을 직접 두 발로 디뎌 보는 것에는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겠지? 이 책 속에 소개된 곳에 올해 안에 적어도 한 곳에는 꼭 가보기를 소망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처음엔 제목에 있는 '영상포엠'이란 말을 그냥 흘려버렸는데 몇 장 읽기도 전에 다시 책 제목을 한 글자 한 글자 되새겨보았다. '영.상.포.엠.'. 영상으로 쓴 시. 그렇다. 이 책은 어느 한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줄줄 적어놓은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시'였다. 경북 울릉도 편에서 나오는 문구 하나. "어느 새 나이를 먹은 내 조촐한 바람 하나. 허위와 가식을 겨울 햇살에 말려 나도 까맣게 윤이 나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88쪽) 아... 몇번을 곱씹어 봐도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겠다. 어려운 시집 하나 손에 들고 있는 느낌같았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파도가 치고, 갈매기가 날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이런 감상을 끄집어 낼 수 있다니, 글을 쓰는 사람에 질투가 일었다. 

강원도 한계령의 산골 노부부. 부부는 서로 살 부대끼며 육남매를 낳고 길렀고, 지금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 분들의 소박한 삶에, 함께 늙어가고 함께 있다는 것... 혹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요즘 사랑은 그 분들의 사랑과 삶의 방식 앞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리라. 내 마음도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 뜨끔해졌다. 
 

영남 알프스의 흔들리는 갈대밭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흐르고 머무르는 것은 자연의 섭리. 누가 무엇이 남게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사랑이란 머무는 순간에 충실한 것. 내 전부를 걸었을 때 비로소 추억이 된다."(70쪽) 사랑은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과연 쉽게 되는 것인가. 뒤돌아 봤을 때 후회로 남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불태워야 하는데 상처받을까 겁내며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강원 태백의 해바라기 밭에서 해바라기가 내게 속삭인 말. "깊숙이 사랑하라! 노란 해바라기가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온몸으로 말한다."(145쪽) 깊숙이. 얕지 않게. 깊숙이. 대신 숨을 깊숙이 쉬어본다. 내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그 만큼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내 심장 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수 있을까. 나는 내 심장의 한 켠을 그에게 내어줄 수 있을까. 대신 내가 숨쉬는 것이 버거워지더라도. 

경북 청송에서 석공이 다듬어 놓은 돌꽃. 신기하고, 또 아름다웠다. "고백하건대 얼어붙은 내 심장에서 꽃을 발견하고 그 꽃을 피워줄 누군가를 나도 간절히 기다린다."(181쪽) 그저 큰 돌에 불과했지만, 석공이 어루만지고 다듬자 꽃이 핀 것처럼 나를 어루만지고 다듬어줄 그 사람. 내 옆에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나를 찾아 헤매고 있을까. 사랑에 충실하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고 기대고 의지해야겠지. 내 마음을 온전히 쏟아부어 최선을 다해야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많은 사진과 글들 속에서 나는 내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소개되어 있는 많은 곳들 중에서 특히나 청송의 주산지에는 꼭 가보고 싶어졌다. 유명한 곳이라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한번도 가보지는 못한 곳. 거기서 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 관광지에서 사진만 많이 찍고 유명한 맛집에서 밥먹고 돌아나오는 관광객이 아닌 그 자연에 허락받고 들어가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한껏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올해 안에 꼭 청송에 가보기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